매일신문

한지공예 취미 김정선씨

아마추어 한지공예가이자 보험회사 라이프 컨설턴트(설계사)인 주부 김정선(35.구미시 봉곡동)씨. 그녀는 삶을 손대지 않고 바라볼 줄 아는 사람 같다. 느긋해 보이는 외모만큼이나 말투도 느릿느릿하다. 틀림없이 심각해야 할 이야기도 그녀가 뱉으면 일상어가 되고 만다는 느낌을 준다.

김씨가 사는 현대식 아파트는 한지가구로 가득하다. 종이재료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견고한 찻상, 반짇고리, 보석상자, 작은 장롱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머릿장, 작은 티슈상자, 편지함, 한지를 뜯어 만든 그림과 액자, 스탠드…. 그녀의 손이 닿으면 밋밋한 한지는 어느새 쓸모 있는 가구로 변하고 풍경이 없던 벽면엔 잘생긴 버드나무가 자란다. 그뿐인가, 흉측한 몰골 탓에 골방에 처박혔던 금속 스탠드는 세련된 옷을 입고 안방에 나타나기도 한다. 도대체 한지로 만들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의구심이 들 정도다.

김씨는 1992년 취미로 한지공예를 시작했다. 자신도 몰랐던 손재주를 확인했던 것일까. 김씨는 금세 흥미를 가지게 됐고 각종 대회에서 여러 차례 수상도 했다. 개인전은 물론 멕시코, 일본, 중국 등 외국인들과 교류전도 몇 차례 가졌다. 재미로 시작한 취미에서 덤을 캐낸 셈이다.

김씨는 취미생활 예찬론자다. 어느 직업이나 마찬가지일테지만 보험회사 라이프 컨설턴트라는 직업도 만만한 직업이 아니다. 시계소리에 맞춰 일어나야 하고, 달리기 선수처럼 거친 숨을 몰아쉬며 뛰어다녀야 하는 일상, 고객의 비위를 맞추어야 하는 일은 어쩌면 삶을 조금씩 갉아먹는 행위인지도 모른다. 그 지친 일상에 한지공예는 한 모금 생명수가 되어 그녀의 마른 목을 적셔준다."한지를 잡으면 시간 가는 줄 몰라요. 서너 시간이 금세 가버리거든요". 김씨는 한지 공예 취미를 가진 덕분에 똑똑한 아들까지 얻었다고 자랑이다. 몇 시간씩 손을 움직이는 작업이 태아의 두뇌 발달에 큰 도움을 주었다는 말이었다.

김씨가 한지공예를 고집하는 이유는 많다. 우선 천년을 간다는 한지의 '한결같음'이 좋다. 빠르게 변해 가는 세상에서 한지만큼 변하지 않는 것은 예찬받아 마땅하다는 말이다. 10년 전쯤 친정에 만들어 준 찻상은 아직도 고고한 품위를 유지한 채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게다가 한지로 만드는 공예품 대부분이 전통 생활제품이다 보니 더욱 사람을 끈다.

김씨는 한지공예의 특징은 기다림과 느긋함이라고 정의한다. 밀가루 풀은 쑤어서 최소한 1주일을 두었다 써야 하고, 한지 한 겹을 붙일 때마다 단단히 마르기를 기다려야 하고, 누군가 꼭 필요한 주인이 나타나기를 인내심 있게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주부들이 남편 뒷바라지하고 아이 키우고 나면 공허해진다고 해요. 저는 아이들 다 키우고 나면 한적한 시골집에서 작품활동하며 시간을 보낼 작정입니다. 그러니까 뭐든 평생 즐길만한 취미를 가지면 공연히 공허해지는 일은 드물 것 같아요". 김씨는 오는 12월 5일 구미문화예술회관에서 전시회를 갖는다며 미래가 공허해질까 두려운 주부들은 한번쯤 구경올 것을 권유한다.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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