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학교 풍수

흥부의 부인은 가난에 찌들리고 하는 일마다 망조가 들자 복(福)이 '좌청룡 우백호 풍수(風水) 타고 나는가'라고 진양조로 슬피 울면서 박복(薄福)타령을 늘어놓는다. 이 같이 풍수지리는 우리 조상들에게는 오랜 자연사상과 인생철학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그 뿌리는 고대 중국에 있지만 신라 말의 도선(道詵) 국사가 보급한 것으로 알려진다. 고려 때는 '풍수도참설'이 국가 이데올로기로 격상됐고, 조선조 말까지 생활과 신앙의 중심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풍수도참설'에는 묏자리를 잘 잡으면 후손 뿐 아니라 묘를 쓴 사람의 금시발복(今時發福)도 가능하다는 믿음까지 있다. 그러나 너무 널리 신봉돼 일제(日帝)는 이 정신적 구심을 말살하기 위해 미신으로 몰아 경멸.배척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 사상은 현대에 와서도 의식구조의 밑바닥에 도도히 남아 있으며, 근래엔 유럽.미국.캐나다 등에서 건축과 인테리어에 유행하기도 한다.

▲최근 미국에서 학교 풍수가 학습 효과를 좌우한다는 주장이 나와 화제다. 뉴욕 타임스는 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인용, 학교의 외적 환경이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를 높이는 데 큰 영향을 끼친다고 보도했다. 1년 동안 햇빛을 많이 받은 학생이 가장 적게 받은 경우보다 수학은 20%, 독해는 26%나 성적이 향상됐으며, 실내 온도가 섭씨 23.3도 이상으로 상승하면 독해력이 떨어지고 25도 이상에서는 덧셈과 뺄셈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실 안의 페인트 색상도 영향을 미치기는 마찬가지라고 한다. 밝은 색은 뇌 활동과 호흡 작용을 왕성하게 하고, 시원한 색은 근육 이완과 스트레스 해소에 효능이 있으므로 교실 내부 색상이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또한 칠판 주변처럼 강한 집중력을 요구하는 곳엔 진한 색상을 써야 한다고도 조언한다. 아무튼 풍수가 요즘 말로는 지리 생태적인 환경결정론인 셈이나 지정학 결정론보다는 과학적이라는 이야기가 아닐는지 모르겠다.

▲대학 수능시험이 올해도 몰매를 맞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헤퍼서, 이번에는 짜다고 야단들이다. 시험의 난이도 뿐 아니라 '한 가지만 잘 하면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이해찬 1세대'의 학력저하 문제까지 겹쳐 더욱 난감하다. '명문 대학 진학이 곧 출세의 지름길'이라는 학벌사회의 서글픈 풍속도에 다름 아니다. 학벌주의의 거품을 빼고 올바른 인재를 키우기 위해 진정 학생들에게 햇빛을 많이 들게 하며 밝고 시원한 분위기를 만들어 줄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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