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에 한국화 감상을 즐기는 아내와 목포로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목적지는 남농 기념관이다. 소치(小痴), 미산(米山), 남농(南農)으로 이어지는 한국 전통 남화의 걸작들을 만날 수 있다는 꼬드김에 기꺼이 따라 나선 참이다. 남농 기념관 옆에는 우리 나라 최고의 수석들을 모아 놓은 향토 문화관도 있다고 들은 터였다.
목포는 당시만 해도 한적한 중소도시라 시내로 들어가기만 하면 이 곳을 쉽게 찾을 수 있으리라 짐작했건만 그게 아니었다. 두어 바퀴 헤매다가 길을 묻자는데 어찌된 일인지 알만한 어른은 아니 보이고 영 아닐 것 같은 쬐그만 녀석들만 눈에 띈다. 초등학교 3, 4학년쯤 됐을까. 밑져야본전이란 생각에 기대도 안하고 길을 물었다. 그런데 웬걸. 이렇게 저렇게 돌아서 어찌어찌 가면 어디쯤 나온다고 진한 전라도 사투리로 대답이 돌아온다. 녀석의 길 안내는 워낙 친절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뭔가 자랑하고픈, 아니 자랑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은 투다. 우리 고장에는 이런 게 있소. 얼마나 좋은지 실컷 보고 가시오. 우쭐하는 뭐 그런 태도다. 초등학교 3, 4학년 짜리 대답이라고는 도무지 믿어지질 않는다.
겉모습만으로는 별로 그렇게 거창할 것도 없고, 풍경이야 좋지만 귀퉁이 한적한 곳에 있는 아담한 전시관. 소치니 남농이니 그래봐야 아는사람이나 알지 모르는 사람한테는 그리 대단한 것도 못될 것이다. 하물며 초등학교 아이들한테야 말할 것도 없다. 낯선 외지인들이 늘 북적대는그렇고 그런 알아주는 곳도 아니다. 그런데 이 동네 사람들에게는 그게 아닌 모양이다. 돌아오는 길에 찾은 밥집 아주머니한테도 들었다. "남농기념관을 모리는(모르는) 목포 사람이 워딨지라".
지금이야 사정이 많이 달라졌지만 당시만 해도 우리 나라 서남쪽 끄트머리에 붙은 조그만 바닷가 도시. 그 도시에 살아 있는 문화적 자긍심이 바로 이런 건가. 한국화의 걸작들을 만날 수 있는 전시관, 평생 동안 모은 수많은 귀물 수석을 내놓는 대가, 신안 앞바다 인양 유물을 전시해 놓은 해양 박물관보다 더 부러운 것이 이네들의 문화적 우쭐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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