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면 젊은이들로부터 좌석을 양보받는 수가 많다. 이미 차지해서 앉은 자기자리를 거침없이 양보하여 주는 이들에 대해서 퍽 고마운 마음이 생긴다. 또 이들이 연로자와 어른을 섬길 줄 아는 것을 보니 예절 바른 것은 틀림없고 보나마나 좋은 가정에서 교양과 교육도 잘 받았구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뿐만 아니라 깍듯이 예절을 지키는 행동거지와 상냥한 모습에서 마냥 우아하고 단아함을 느낀다. 이내 감사하다는 답례를 하고 대신 손짐을 들어줄 때도 있다. 그런데 나 때문에 그 젊은 사람이 반대로 불편히 서 있는 자태를 보노라치면 내 마음이 홀가분하지만은 않다. 아직은 사지육신이 멀쩡한데 단순이 나이들었다는 그것만으로 남은 불편하게 되고 나는 편안해서 되겠나 하는 생각에서다. 그리고 가정에서는 어른과 할아버지 소리를 들은 지도 오래되었지만 사회생활에서까지 이같은 대우를 받고 노인 호칭을 듣게 되니 어딘가 씁쓰레한 느낌도 생긴다.
지하철과 버스안에서는 으레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여 예의 바른 문화시민이 됩시다'라고 다부지게 방송도 하고 있다. 또 어떤 버스에는 몇군데 좌석에 무슨 로열석처럼 아예 경로석이라는 딱지를 붙여 놓고 있는 데도 있다. 이런 것은 그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예절과 승차문제를 장려하는 캠페인이라서 좋다.
반면 이같은 대중교통안에서는 언짢은 장면도 가끔 생긴다. 소매치기가 설치기도 하고 상인들의 판매와 속임수 매각이 강행되기도 한다. 간혹 승객들끼리 고성과 꾀죄죄한 실랑이를 벌여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만든다. 때로는 운전기사의 퉁명스러움과 부주의로 승차 분위기가 망가지고, 심한 경우 승객들이 불의의 피해를 입는 수가 있다. 하나 이같은 불상사는 다행스럽게도 시민의 수준향상과 관계당국의 예방과 단속으로 차츰 개서되어 가고 있다.
이처럼 혼잡하고 들락거리는 차내에서도 보다 다른 아름다운 정경이 보인다. 독서를 하고 있는 장면이다. 요즘 사람들은 출퇴근과 용무와 관광 등으로 부득불 버스와 지하철 이용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고 돈도 써야 한다. 내가 아는 어느 샐러리맨은 원거리 출퇴근 때문에 많지 않은 수입의 대부분을 길에 깔아버린다고 볼멘소리를 낸다. 또 어떤 이는 차 타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겨 삶의 여유가 없다고 투덜대기도 한다.
과학의 산물인 문명의 이기는 편리하면서도 위험하고 수월하면서 부담을 주고 시공을 단축시켜주면서도 더 바쁘고 복잡하게 만든다. 이 교통수단이 이같은 야누스적 장면을 갖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이런 역기능은 우리 모두의 노력과 슬기로 썩 줄이거나 제거할 수 있다. 누가 말했듯이 선진국 사람들은 대중교통 승차 중에 대개는 책을 읽고, 중진국 사람들은 신문을 보고, 후진국 사람들은 졸고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그 나라 국민의 문화 수준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들은 어떤 위치에 놓여 있을까.
차내에서 어른과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여 주는 일은 다른 나라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우리 특유의 미풍이고 대표적인 승차 에티켓이다. 또 앉은 사람이 서 있는 사람의 소지품을 들어주는 장면도 참으로 아름답게 보인다. 시트메이트(Seatmate)끼리 서로간 덕담을 하는 장면도 보기 좋다. 하다못해 달리는 차창 밖에 무수히 오가는 형형색색의 군상을 보면서 자화상을 그려 보는 것도 흥미롭다. 특히 원거리 투어때는 차창을 통해 계절따라 다른 모습으로 바꾸어 가는 자연의 경관을 관찰하고 음미해 보는 것은 매우 정서적이고 환상적이다. 간혹 차내서 가무음주로 왁자지껄하다가 타인의 빈축을 사고, 이 때문에 크나큰 사고를 유발하는 수도 있다. 이로 말미암아 자타 함께 낭패를 보는 일에 비하면 이런 행위는 참으로 상찬할 장면이다. 요즘은 하도 바쁘고 복잡한 세상이라 너나 할 것 없이 고정주택(Fixed house)에서만큼이나 이동주택(Mobile house) 생활이 잦고 많다. 이런 시대일수록 승차 시간을 잘 활용하고 안전을 찾는 방안을 다시 모색하여 보자.
이처럼 승차안에는 단순히 빠르게 목적지에 간다는 의미 외에 다른 여러가지 메리트가 있다. 생활의 지혜와 예절과 인정이 듬뿍 깃든다. 서로 도우고 배려하고 봉사하는 미덕이 있다. 더 아름답고 훈훈한 삶을 만들어 내는 동기와 근원이 이 차 속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거대한 땅덩어리도 덩치가 어마어마하고 넓디넓고 더 빠를 뿐 달리는 차와 그 이치는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차 속의 이로운 양상이 여기까지 미치면 티격태격 상처투성인 이 지구촌도 한결 순화되어 더 살기좋은 세상이 될 것이다. 오늘도 어느쪽으로 버스를 타고 가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이영희-수필가)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野, '피고인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중지' 법 개정 추진
'어대명' 굳힐까, 발목 잡힐까…5월 1일 이재명 '운명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