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해광칼럼-역사적 마무리를 위해

2003년 2월25일이면 김대중 대통령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준비된 대통령으로 시작한 그의 대통령직 5년간 숱한 영욕의 세월을 마감하는 날이다.

역대 15대 대통령 중 초대 이승만 대통령을 제외한 최고령으로서 제2의 건국운동을 전개, 역사에 남을 수 있는 영명한 대통령이 될 수 있을지를 판가름하는 기간은 불과 1년2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 그야말로 청사에 길이 남을 '제2건국의 아버지'일지의 여부가 앞으로 남은 14개월이 분수령으로 작용한다.

이땅에 생명을 부여받아 삶을 향유하는 국민이라면 우리의 노(老) 대통령이 해피엔딩이 되기를 기대해 마지 않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팔순을 바라보는 우리의 대통령이 온갖 포폄훼예(褒貶毁譽)를 무릅쓰고 영일이 없었던 지난 3년여 세월을 거울삼아 앞으로의 1년여 분수령을 잘 넘으시길 기원하면서 세가지 감언을 드린다. 이설(利說)이 되기를 간곡히 희망한다.

첫째, 지난번 APEC 정상 회담후 귀국하자마자 흉흉했던 국내 민심을 수습(?)하여 흔쾌히 내버린 집권여당의 총재직은 정말로 오랜 가뭄 끝에 만난 한줄기 단비처럼 시원했고, 사랑의 비 그 자체였다. 이반된 민초들의 원망소리가 도처에 높았지만 러시아 속담처럼 신은 너무 높이 있고, 황제는 너무 멀리 있었던 바로 그때에 어둠의 세력은 걷히고 빛의 세력이 나타났으니 참으로 아름답기까지 했다.

대통령은 사리(私利)에 앞서 공익을 앞세우며, 일개 정당의 당수가 아닌 한 민족국가의 원수임을 감안할 때 정말로 만시지탄이기는 하지만 하나의 큰 결정 앞에 숙연한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다. 프랑스 정치철학자 자크 마리탱을 원용하지 않더라도 공공선은 권위의 바탕이자 권력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둘째, 지난 11월28일 로이터 통신과의 회견에서 "북한당국에 실망했다"는 지적은 아무리 생각해도 고뇌에 찬 표현이 아닐 수 없었다는 것이다. 국민의 정부가 최대 역점을 두고, 온갖 비난의 표적을 무릅쓰고 강행했던 햇볕 정책에 대한 엄정한 자가비판이요, 냉엄한 자기분석에 대한 압축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일희일비하지 않고, 절망은 않는다"라는 소신은 국민들에게 강렬하게 와닿는 충고이자 부탁이란 사실이 백마디 웅변보다 더 가슴에 와닿았다. 그간 햇볕정책에 대한 제도화와 공론화가 문제로 지적됐고, 전체 국민들이 일방적인 퍼주기식 대북 유화정책에 대하여 비판의 소리가 높았던 점을 고려할 때 로이터회견에서의 지적이 아주 시의적절하고 국민감정에 부합됐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비무장지대 휴전선에서 북한군의 총격사건과 6차 남북장관급 회담 결렬 후 보인 북한의 대남 비방과 홍순영 통일부장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 등은 우리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기에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햇볕정책의 목적과 본질이 아니라 그 과정과 방법의 공론화 및 제도화였는데 이 점에 대한 총체적 현실인식을 대통령이 정확히 했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반겼다는 점이다. 국민들의 정서를 뒤늦었지만 관통했다는 점에 대하여 높게 평가할 부분이라 하겠다.

셋째, 직접 관련은 이제 없다고 하겠지만 집권여당의 오너로서 누가 뭐래도 자타가 공인할 실질 지배주주인 김대통령에게는 쾌보요 국민에게는 낭보가 바로 차기 대통령 후보 선출 방법으로 거론되는 '예비(primary)선거 도입설'이다. 만약 이 방식이 채택되면 그간 건국 이후 갖가지 이전투구식 정치권의 비리와 부정을 발본색원할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된다. 밀실정치, 보스정치, 황제적 하향공천 문제가 뿌리뽑히는 정당 민주화가 개막되는 신기원을 찍게 되는 서광이 비친다고 하겠다.

그동안 한국은 3김 정치의 폐해를 운위했는데, 그것은 바로 공천권과 당론결정권을 한손에 쥔 그들의 독재와 전횡을 이름인데 그것을 타파하는 절호의 기회가 도래함을 의미하는 예비선거제 도입이야말로 이 땅의 국운을 획기적으로 변전시키는 정치적 쾌거요, 민주화의 완성이란 격찬을 드리고 싶다.

(계명대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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