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소년 담배판매 금지 외면

지난달 29일 오후 3시 40분쯤 대구시 북구 대현동 ㄷ공고 주변. 학교에서 500m 정도 떨어진 제과점에서 이 학교 학생 박모(17.고2.)군이 디스 한 갑을 손쉽게 구입해 담배 한 대를꺼내고 있었다. 이 근처에 산다는 박군은 "집에서 옷만 갈아입고 나오면 담배 구하기는 식은 죽먹기"라고 말했다. 친구 이모(17)군도 "교복을 입고 있어도 윗도리만 벗어버리면 토큰 판매소 등에서 쉽게 담배를 구할 수 있다"고 털어놨다.

이 학교 안모(43) 교사는 "흡연학생을 단속해봤자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며 "학생들은 어디에서든 쉽게 담배를 구입할 수 있다"고 하소연했다.

'공공건물 및 초.중.고교 내에서의 절대 금연' 등 보건복지부의 금연종합대책으로 어른들 사이에 금연 바람이 불고 있지만 어디에서나 쉽게 담배를 구할 수 있는 청소년들에겐 소귀에 경읽기다.

청소년에게 담배를 팔 수 없도록 한 청소년보호법은 현장에선 사문화된지 오래고 PC방, 문구점, 만화방 등 청소년 출입이 잦은 업소에 대해 담배판매를 금지한 개정 담배사업법도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

지난 95년 제정된 청소년 보호법은 만 19세 이하 청소년에게 담배를 팔다 적발되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10대들은 동네 담배 가게나 기타 담배판매소에서 돈만 주면 얼마든지 담배를 구입할 수 있다.

대구경찰청 청소년계 관계자는 "담배판매소가 너무 많아 이들을 대상으로 한 단속은 거의 불가능하다"며 "담배를 피다 적발된 학생에 한해 역추적을 실시하고 있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청소년 보호법상 학생들은 처벌대상이 아닌데다 "아버지 담배를 훔쳐피웠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둘러대면 이들에게 담배를 판 가게를 찾아내기도 힘들다는 것.

지난 7월 1일 이후 담배사업법이 개정되면서 청소년 출입이 잦은 업소에선 담배를 팔 수 없게 됐지만 이 역시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커피숖, 게임방, 노래방, 문구점 등의 담배판매가 사라진 대신 영세슈퍼, 토큰 판매소, 휴대폰 대리점 등 새 담배판매소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기 때문.

실제 담배소매소 현황을 구청별로 살펴보면 중구청, 북구청 등이 지난해에 비해 60여개소 줄어든 반면, 수성구청은 지난해 1천322개소에서 올해 현재 1천435개소로 늘어났고 동구청 역시 지난해 1천65개소에서 올해는 1천200개소로 증가했다.

중구 ㄱ여상 강모(37) 교사는 "동네 구멍가게의 경우 교복을 입고 있는 여학생에게도 무차별적으로 담배를 판매하고 있고 청소년들이 자주 찾는 휴대폰대리점, 대학가 등에서도 교복만 벗으면 쉽게 담배를 구할 수 있다"며 "담배판매소를 한정해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역 일선 교사들은 "복지부가 내년부터 청소년에게 담배를 파는 업소를 신고하면 일정액의 포상금을 지급하기로 했지만 근본적 대책은 될 수 없다"며 "미국 등 선진국처럼 담배소매소가 27세 미만의 모든 소비자에 대해 사진이 부착된 신분증명서를 확인하도록 법제화하고 면허제를 도입해 청소년에게 담배를 판 담배 소매상들의 면허를 취소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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