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 서구 비산동의 한 골목길에 자리잡은 '희년 공부방'. 학교 수업을 끝낸 조무래기들을 모아놓고 무엇인가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자원봉사 교사 이숙현씨, 비산동 주민을 위한 이 무료 공부방의 운영 실무이자 전천후 교사다. 도대체 무슨 수업이기에 저렇게 시끄러울까 싶을 만큼 아이들은 자유분방하다.
이숙현 선생은 1991년 대학을 졸업한 이래 지금까지 다른 직장을 가져본 적이 없다. 대학생이었던 90년 침산동 공부방에서 자원교사로 시작, 92년 비산동의 '희년 공동체' 산하 공부방 자원교사가 됐다. 누군가는 해야할 일이었고 마땅한 사람이 없었기에 덜컥 맡은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희년 공부방'은 성적향상을 위한 보충수업 기관이 아니다. 이 곳의 수업은 인성훈련이나 감각활동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짜여져 있다. 솔직하게 표현하는 글쓰기, 그림그리기. 연극놀이, 공동체놀이, 야외활동, 신문활용수업, 다양한 현장체험활동 등등. 서구청 위탁으로 진행하는 '청소년 공부방'은 주로 고등학생들이 참가하는데 우리문화유적답사, 자치활동, 동아리활동 등이다. 가끔은 수학, 영어 등 아이들이 혼자 풀기 어려운 과목을 수업에 포함시키기도 한다.공부방 아이들의 월회비는 1만5천원.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아이들이 내는 회비는 수강료라고 이름붙일 만한 것은 못된다. 그러나 그것마저 못내는 아이들이 절반을 넘는다. 그렇다고 걱정할 것은 없다. 이 곳은 회비를 못 낸다고 못 오는 곳이 아니며, 회비를 낸다고 누구나 올 수 있는 곳도 아니기 때문이다. 전세금 2천만원 이하 맞벌이 가정의 자녀만 이 공부방 프로그램에 참가할 수 있다. 현재 20여명 정도가 주 5일 이상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으며, 고등학생도 20명쯤 된다.월급이 어느 정도냐는 물음에 이선생은 '품위 유지비' 정도라고 대답한다. 탐문 결과 20만원에서 30만원쯤 되는 듯하다. 그는 '반듯한 직장'을 기대하며 힘들게 대학공부를 시켜준 부모님을 배신하고(?) 대신 우리 사회를 지키는 전사의 길을 택한 셈이다.
공부방을 운영해오는 동안 가슴뿌듯했던 순간도 많았다. 졸업한 아이들이 우리 사회를 생각할 줄 알게 되고, 자기 역할을 찾으려 고민하는 모습을 볼 때였다. 그러나 공부방에 오고 싶어도 어린 동생을 돌봐야 하기에 못 오는 아이들을 볼 때는 우울하다. 생활에 쫓겨 정작 중요한 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달리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일은 슬프기까지 하다.
현재 이 선생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대학생 자원봉사자의 부족. 매일 1, 2명쯤은 꾸준히 함께 해줘야 숨통이 트인다. 특히 연극놀이 등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한 수업은 전문강사를 초빙해야하니 이래저래 힘겹다.
기자가 "형편도 어려운 듯한데 과외라도 좀 하시지요…" 했더니 대뜸 "이 일도 바쁘다"고 잘라 말한다. 그는 "성적향상을 위한 과외는 우리 사회가 낳은 기형아"라는 말도 덧붙였다. 실제로 이 선생의 일과는 분주하다. 오전엔 관련회의나 자료 찾기 등 외부일, 낮 12시부터 밤 10시까지는 공부방을 열어놓고 프로그램을 짜고 아이들을 가르친다.
이숙현 선생은 이 짧은 인터뷰가 공동체 현장을 지키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혹시라도 엉뚱하게 전달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내심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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