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산맥 북쪽 위풍당당한 산록이 마을을 병풍처럼 두르고 보현천과 길안천이 감싸 흐르는 천세의 명당길지, 그 연유로 마을 이름도 명당마을이다.
마을에서 출중한 인재가 수없이 배출된 근원도 출중한 지세의 정기에 있다고 한다. 학.덕.효행 등으로 군지에 기록된 인물이 80명이 넘고 거유 학봉 김성일도 이곳의 외가에서 태어났다.
여흥(驪興) 민씨(閔氏) 집성촌으로 조선 태종의 국구(國舅)인 문도공(文度公) 민제(閔霽)의 증손 민흥(閔興)이 세종조에 입향해 개촌했다.
민흥은 성리학의 경지에 이른 인물이며 그의 두아들 세경(世卿)과 세정(世貞)은 조광조.김안국 등과 학문을 교류하였다.
특히 세정은 명석해 효렴과(孝廉科)에 장원급제, 언양 현감과 함길도사에 제수되어 현관으로 이름을 떨쳤으나 후일 기묘사화에 연좌돼 파직당한다.
그 여파로 당시 성균관 유생이던 입향조의 종손자 명지제(明智齊) 민추(閔樞)는 벼슬의 무상함을 느끼고 낙향해 청송사학의 효시인 송학서원을 열고 후진양성에 전념했다.
그는 일찍이 고모부인 안동 내앞(川前)의 청계공 김진에게 나아가 학문을 배우고 고종형인 약봉.학봉과 교류하며 성리학 수학에 정진해 무극태극론 등 25권의 저술을 남겼다.
그의 문도(門徒)중 대표적 인물로는 지금도 지역에서 명현으로 추앙받는 조형도(趙亨道), 신즙(申楫), 권익(權翊), 이준성(李俊成) 등이 있다.
민추의 둘째 아들 근효는 부친의 뒤를 이어 후진을 양성했고 명지서당을 송학서원으로 발전시켜 이퇴계, 김학봉, 장여헌 선생을 배향하고 인재를 길러냈다.
민씨 집안에는 학봉선생의 출생과 관련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안동 내앞의 의성김씨 문중으로 출가한 학봉의 모친이 학봉을 수태한 후 출산일이 다가와 이곳 친정으로 왔으나 부친이 태어날 아기가 범상치 않아 외가의 정기를 모두 받아 가버릴 것을 우려해 급히 돌아가도록 했는데 도중 산통이 시작돼 인근의 외척인 안동 권씨집에 들어 출산하게 됐다는 것.
그런데 거짓말 같게도 학봉은 거유로 입신양명했으나 이 안동 권씨집안은 이후 절손(絶孫)의 비운을 겪었다고 전해진다. 학봉선생 출생의 전설이 내려오는 고가옥은 아직도 명당 2리에 자리잡고 있다.
청송.김경돈기자 kd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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