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외길 언론인

"언론은 이용할 수도 없고 이용당해서는 안된다"는 말은 고(故) 장기영 한국일보 사장이 생전에 언론인들의 자세와 관련해서 자주 사용했다고 한다. 어떤 사물(事物)을 접근하든간에 객관성 유지와 균형감각을 맞추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신문 등을 이용해 특수목적을 달성하려는 사람의 의도를 한 순간에 알아차려 이를 비켜서야 하고 이럴 경우 상대방의 마음을 살피는 배려도 갖추라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 결코 이용당하지 말라는 장기영(張基榮) 사장도 한때 경제부총리로 자리를 옮겼고 그 생애는 외길의 언론인생과는 다소 거리가 있긴 했지만.

한국 언론계에서 '외길 언론인'의 대표적인 인물을 꼽는다면 아무래도 몽향(夢鄕) 최석채(崔錫采)선생과 청암(靑巖) 송건호(宋建鎬)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이다. 몽향 선생은 잘 알다시피 김천시(金泉市) 출신으로 매일신문 주필을 역임했고 재직 당시 쓴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는 사설은 독재정부의 행태를 정면으로 비판한 명사설(名社說)로 남아있다. 그 당시 이승만(李承晩)정권의 횡포에 맞선 매일신문의 올곧은 기개를 한국언론사에서는 한 장(章)을 여는 역사적인 일로 국민들은 기억한다.

21일 75세로 세상을 하직한 송건호 한겨레 신문 초대 사장은 관직 유혹을 뿌리친 '선비형 지식인'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75년 동아일보 편집국장 자리를 박차고 나오자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청와대로 오시오"라며 유혹의 손길을 몇차례나 내밀었으나 거절했다고 한다. 권력이 정상궤도(軌道)를 벗어나면 언제나 호된 비판을 멈추지 않는 치열한 삶을 살았다. 언론이 암울한 시기를 거치는 동안 언론의 민주화운동의 선봉에 섰고 '한국현대사론'등 20여종의 책을 펴내는 저작활동으로 현대사 연구에도 큰 몫을 했다.

청암은 인생의 두가지 길중에서 '역사의 길'을 택했다고 한다. 파킨슨 증후군으로 장기 투병한 청암을 곁에서 지켜 본 큰아들 준용(41)씨가 한 잡지에서 밝힌 모습이다. '현실의 길'을 수용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올바른 자세를 늘 염두에 두었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언제나 회한이 남는 것이지만 살아가는 과정에서 '편한 자리'에 대한 유혹을 과연 얼마만큼 뿌리칠 수 있을 것인가. 보통사람은 아무래도 고개를 선뜻 돌리지 못할 것이다. 지조있는 생애는 그만큼 자기자신에 엄격한 것인지도 모른다.

최종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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