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아, 암 많다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큰아이가 막 세 살이 나던 해였으니 그러니까 햇수로 따져 십 이삼 년 전쯤이었던가. 여름도 서서히 막바지로 접어들던 팔월 하순 무렵, 고향의 부모님을 모시고 감포 앞 바다를 찾았었다. 풍광에 반해 지난 날 몇 번씩이나 찾은 적이 있는 한적한 해안가 마을이다.

공동어시장에서 반 마장쯤 떨어진 방죽 가에서 우리는 자동차를 세웠다. 문짝을 밀치고 한쪽 발을 땅 위로 내딛는 순간 잔뜩 소금기를 머금은 바닷바람이 비릿한 갯내음을 풍기며 익은 무화과열매처럼 끈적끈적한 촉감으로 살갗에 전해져 왔다.

먼 수평선에다 시선을 준 채 모두들 서너 차례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잠시 탁 트인 바다 풍경에 취해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아이가 잔뜩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앙증맞은 손가락을 들어 먼바다 쪽을 가리키면서 느닷없이 어눌한입놀림을 하는 것이 아닌가.

"아! 암 많~다". 아이는 쉴새없이 넘실대던 그 바닷물을 몽땅 마실 물로 생각했었던 모양이다. 우리는 아이다운 그 천진난만한 발상에 모두 크게 소리내어 웃었다.

아이의 할머니는 "그래, 아이고 요 내 새끼, 아이고, 요 내 새끼"하며 연신 손자의 엉덩이를 토닥이고 볼을 비비셨다. 당신의 마음에는 그런 앙증스런 말을 주워섬긴 세살배기 손자가 무척이나 대견하게 여겨지셨으리라. 생각해 보니 안개처럼 아스라이 떠오르는 지난 시절의 참 행복한 한때였었던 것 같다.

손자 사랑도 어쩌면 내림인가. 지난 날 내 할머니가 그러셨듯이 아이의 할머니 역시 당신의 맏손자에게 자별한 정을 쏟으셨던 걸 보면. 어머니는 손자가 이따금 당신 앞에서 재롱을 부릴 때면 언제나 감포 앞 바다에서 했던 아이의그 말을 웃으며 되뇌곤 하셨다.

손자의 그 혀짜래기 발음을 노래처럼 곧잘 흉내를 내곤 하시던 어머니의 그 웃음 섞인 음성이 어제 일처럼 짠해 온다. 생전에 하셨던 하고많은 말씀 가운데 오늘따라 유달리 이 한 마디가 어째서 가슴 깊이 파문을 남기며 내게 속울음을 울게 하는 것일까.

이따금 번잡스럽고 뒤숭숭한 세상사로 마음 한 구석이 울적해질 때면 어머니의 그 카랑카랑하시던 목소리를 꼭 한 번만이라도 다시금 들어보고 싶어지곤 한다. 아! 그리운 어머니.

수필가 곽흥렬

최신 기사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민의힘은 9일부터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는 모든 법안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시작하며, 내란전담재판부 및 사법 관련 법안을 '사법파괴 5대 악법'으...
iM뱅크의 차기 은행장 선임 작업이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며, 19일부터 22일 사이에 최종 후보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강정훈 경영기획그...
대구에서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칼로 찌른 20대 남성이 체포되었으며, 피해자는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어 대전에서는 30대가 대리운전 기사를 차량...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