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권 향배좌우...'몰표' 재현될까

3천250만표에 이르는 전국 유권자 가운데 11.4%에 해당하는 371만여표(6·13 지방선거 기준)가 대구·경북의 유권자다. 그러나 "TK표가 대선의 최대 변수(變數)"라는 이야기가 정치권에서는 유행어가 되었고 아직도 TK지역 유권자들 다수는 그렇게 믿고 있다. 대구·경북 표의 집단성 즉 되는 쪽에 '몰표'를 주는 성향 때문이다.

그렇다면 40일 앞으로 다가온 이번 대선에서는 TK표가 승부를 좌우하는 변수가 될까. 또 TK가 미는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을까.

일단 현재 상항에서 볼 때 지금과 같은 추세가 유지될 경우 TK표가 변수로 작용할 것 같지는 않다. TK표는 이미 갈 곳이 정해진 상수(常數)처럼 보인다. DJ정권 출범 이후 요지부동의 TK표심은 이번에도 흔들릴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회창 후보에게 쏠리고 있는 표가 다른 곳으로 흩어져 어디로 갈지가 불투명하면 변수가 되겠지만 지금 그런 기미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는 말이다.

한나라당에서는 TK에서 점수를 따고 들어가는 것으로 간주하고 득표율을 무려 80% 이상으로 잡고 있는 등 승리를 기정 사실화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이나 통합 21에서는 "TK표 가운데 20~30%만 획득하더라도 다른 곳에서 만회, 승산이 있는데 그 표를 얻기도 어렵다"고 토로하고 있다.

물론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당선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TK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대권을 잡을 수 없다"는 속설은 적중할 가능성이 높다는 성급한 이야기도 많다.

▨16대 대선을 앞둔 여론의 추이

이번 대선을 앞두고 TK표는 예의 집단성을 유감없이 발휘할 것이라는 전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실제로 한나라당 인사들 사이에서는 수십만명이 모이기로 유명한 '신천변 유세' 등을 거치면서 막판에 표를 한 쪽으로 몰아주는 유권자들의 독특한 투표 성향이 TK의 정치적 저력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막판이 아니라 선거전이 시작되기도 한참 이전에 표가 한 쪽으로 몰렸다. 지난 5년 국민의 정부 즉 DJ 정권에 대한 강한 반감 탓이다.

매일신문이 지난해부터 꾸준히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몰표의 기류는 이미 1년전부터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

지난 연말 가상 대결에서 이 후보는 58~61%대의 지지율을 보여 여타 후보들을 압도했다. 그 후 민주당의 국민경선 붐을 타고 불었던 '노풍' 탓에 노무현 후보가 4월과 5월에 각각 28%와 21%대로 선전하자 이 후보의 지지율이 41%와 46%대로 내려오기는 했지만 TK지역에서의 '이회창 우위'는 변함이 없었다.

또한 월드컵 4강의 분위기를 탄 정몽준 후보의 대선 출마 가능성이 높게 보이던 7월 이 후보는 2위인 정 후보보다 35%나 높은 지지율로 압도했다. 정 후보의 대선 출마 선언으로 대선 구도가 이회창-노무현-정몽준 후보의 3자 대결 구도로 굳어지기 시작한 9월 조사에서 48%대로 약간 주춤하던 이 후보 지지율은 10월 들어 다시 51%로 회복됐다. 이 기간 정 후보 지지율은 27%대로 높아졌다가 다시 22%대로 하락했다. 노 후보는 10~12%였다.

그리고 정 후보의 통합21 창당 직후인 11월 들어서도 정 후보의 하락세(17%)는 여전해 이 후보가 56%대로 상승세를 이어갔고 노 후보 역시 열세(11%)를 회복하지 못했다. 후보단일화의 가능성까지 이야기되지만 TK 표심에는 일단 가능성이 낮아보이는 때문인지 큰 충격파를 던지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이처럼 전체 유권자를 상대로 한 조사에서 이 후보로의 표 쏠림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고 투표 참여층을 상대로 한 조사 결과를 분석하면 그 정도는 더욱 심해진다.

▨역대 대선과 TK표

TK가 본래 대선에서 몰표 성향을 보인 것은 아니다. 63년 박정희 후보와 윤보선 후보가 맞붙은 5대 대선에서 55%대 36%로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비교적 엇비슷한 지지를 보였다. 하지만 67년 6대 대선에서부터 동서간 양극화 현상이 보이기 시작해 64% 대 26%로 격차가 더 벌어지더니 김대중 후보가 등장한 71년 7대 대선에서는 75%대 23%로 박정희 후보에게 몰표를 주기에 이른다.

그 후 직선제가 부활, '1노3김'의 대결로 불리는 87년 13대 대선에서도 몰표의 전통은 이어졌다. 당선자인 노태우 민정당 후보와 2위인 김영삼 통일민주당 후보간의 전국적인 표차이는 194만표를 넘었고 TK에서는 116만여표의 차이가 났다. 오랜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반발과 사회 전반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고려할 때 노 후보의 대구 70%, 경북 66% 득표율은 사실상 몰표였다.

지역 출신 후보가 나오지 않았던 92년 14대 대선에서도 '정주영을 찍으면 김대중이 된다'는 반DJ 정서 자극작전에 힘입어 민자당의 김영삼 후보는 민주당의 김대중 후보를 TK지역에서만 144만여표를 앞섰다. 당시 전국의 두 후보간 표차는 193만여표였다. 선거운동기간중 선전을 펼쳤던 국민당의 정주영 후보는 결국 지역감정의 벽을 넘지 못했다. 당시 전국의 모든 언론들은 "TK표가 YS 승리의 견인차였다"고 평가했다. 이는 분산될 듯해 보이던 표가 막판에 지역정서에 자극을 받은 탓인지 몰표로 변했기 때문이었다.

당선되는 후보에게 더 많은 표를 준 전통은 14대 대선까지 한 번도 어긋나지 않았다. 적게는 55%에서 많게는 75%까지 5~7대 그리고 13, 14대 대선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당선되는 쪽에 표를 몰아주는 경향을 보인 것이다. 5~7대 때는 지역 출신인 박정희 후보가 나선 선거였고 13대 때도 대구 출신의 노태우 후보가 출마했으므로 정치 성향을 떠나 고향사람 밀어주기가 몰표의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14대 선거는 지역 출신이 없었음에도 그동안 누적돼 온 반DJ 정서가 그대로 반영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97년 15대 대선은 달랐다. 이 때도 몰표 현상은 여전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를 154만여표 앞섰다. 두 후보간 전국 표차이는 39만여표에 불과했다. 이 후보는 TK에서 압도적으로 이기고도 다른 지역에서 DJ에게 압도적으로 진 것이다. 이 후보의 득표율은 대구에서 72%, 경북에서 61%였다. 이로써 'TK는 되는 사람만 찍는다'는 불문율은 깨졌다.

이동관기자 llddk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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