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과 '고객님'.
롯데백화점 대구점 개점에 따른 지역 백화점계에 불기 시작한 변화의 작은 한 단면이다.
롯데백화점의 '손님'이란 통일된 호칭에 맞서 지역 백화점은 지금까지의 '언니' '어머니' 등 여러가지 호칭 대신 '고객님'이란 이름으로 통일하자는 분위기가 일기 시작한 것.
이뿐 아니라 지금껏 단기간에 그쳤던 사은행사도 장기간 지속되면서 백화점간 출혈. 과당경쟁이 벌어지고 있고 서로 누가 먼저 끝낼지 눈치만 보고 있다.
외지의 거대 백화점의 등장으로 지역 백화점계에 한치도 물러설 수 없는 '경쟁 시대'가 온 것이다.
지역민들도 편치만은 않은 것 같다.
'지역 수성'이냐 '쇼핑 다양성'이냐를 두고 보이지 않게 갈등하는 시민들도 적잖다.
롯데백화점 대구점 개점이 몰고온 지역 백화점계의 변화상 및 지역민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봤다.
"롯데백화점엔 싼 물건도 많고 선물도 많이 준다던데 오늘 한번 가 보자". "안돼 지역 기업을 이용해줘야지. 안그러면 돈이 다른 지역으로 빠져 나간다더라. 또 여기도 사은품 주는데 뭐". "어쩌지?"
지난 6일 동아쇼핑센터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가던 중년의 아주머니 3명이 나눈 얘기다.
'지역'이냐 '실리'냐를 두고 갈등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이쪽 아니면 저쪽'이란 극단적인 논리로 양분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잖은 백화점 이용객들이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작은 '흔들림'이었다.
백화점에서 만난 시민들은 대체로 쇼핑 기회가 다양해진 것에 대해 반기면서도 왠지 꺼림칙하다고 했다.
김민정(34·여)씨는 "선택의 폭이 넓어져 좋긴 하지만 안그래도 지역 경기가 안좋은데 지역 백화점 고객 감소로 경제 사정이 더욱 악화되지 않을까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나 외지든 지역 백화점이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시민들도 적잖았다.
이정숙(57·여)씨는 "어디서 쇼핑하든 우리나라안에서 돌아갈 것이고, 언제까지 '지역, 지역'할 수도 없다"며 "백화점간의 선의의 경쟁속에서 소비자는 좋은 물건을 보다 싸게 구입하는 게 최상"이라고 했다.
김영희(49·여)씨는 "당장은 지역 백화점들이 타격을 입을 수 있겠지만 선의의 경쟁을 통해 지역 백화점들의 서비스와 쇼핑 환경이 개선되면 장기적인 경쟁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며 "보통 시민들은 편하고 늘 가던 데로 가는 경향이 있어 서비스나 상품에 큰 차이가 나지 않으면 지역이든 외지 백화점이든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백화점간의 과당경쟁을 '무기'로 사용하는 고객들도 있다.
한 의류매장 직원은 일부 고객의 경우 흥정이 안맞으면 "그럼 다른 백화점으로 가지 뭐"하며 으름장을 놓는다는 것.
또 '어느 백화점은 뭐도 준다', '얼마 이상 물건을 구입하면 이보다 더 좋은 사은품을 준다'는 등의 비교성 발언으로 곤혹스럽다고 했다.
이 때문에 고객을 빼앗기지 않기 위한 백화점간의 사은 행사 경쟁이 더욱 과열, 백화점 3사는 서로 눈치를 보며 사은행사 마감 시기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
사은행사는 지금껏 보통 10~20일 정도 실시했지만 롯데백화점 개점 이후 벌써 한달이 지났다.
게다가 서로간의 극심한 눈치 작전으로 언제 끝날지도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최소한 다음달까진 이어질 것으로 백화점 관계자들은 보고 있을 뿐이다.
사은행사 횟수도 늘어나 동아백화점의 경우 사은행사를 연간 1차례 실시했지만 올들어선 벌써 5번째다.
대구백화점도 마찬가지여서 보통 연간 2~4차례, 10일 정도 가졌던 사은행사를 늘릴 계획이다.
롯데백화점도 사은, 기획 등 행사를 연간 지속한다는 방침이다.
백화점에서 소위 세일(할인판매) 기간 중 사은행사를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지금은 이것 저것 따질 겨를이 없다.
백화점 관계자들은 "다른 백화점에서 사은행사를 끝내지 않는 한 출혈이 심해도 계속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이렇게 사은 행사가 지속되다보니 행사 사은품을 받기 위해 고객간에 영수증을 얻는 모습도 백화점의 풍속도로 자리잡고 있다.
6일 대백프라자 정문 밖 사은품 배부처엔 수십명의 고객들이 손에 영수증을 쥔 채 줄을 서 있었고, 옆에서 영수증을 꼼꼼히 살피며 영수금액을 계산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또 다른 사람들에게 영수증을 얻거나 바꾸기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쉽게 눈에 띄었다.
사은품을 받기엔 영수증 액수가 부족해 필요 이상 액수의 영수증을 가진 사람들에게 영수증을 얻거나 맞바꾸기 위한 것.
30대 한 여성은 "사실 조금 부끄럽기는 하지만 2만원 정도만 더 채우면 필요한 사은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진 않는다"며 "사은품을 받고도 남는 액수의 영수증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바꿔줘도 손해보는 것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사은행사 경쟁과 함께 '세일' 경쟁도 만만찮다.
백화점들은 세일 횟수를 늘릴 순 없지만 매장의 세일 참여를 최대한 늘리는 등 대책을 간구하고 있다.
동아백화점의 경우 매장의 세일 참여율을 90% 이상 높이고 할인율도 최고 50%까지 실시할 계획이다.
백화점 내부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호칭 변화는 물론 화장, 두발 등 용모검사도 강화됐다.
또 직원들의 이탈 방지 및 사기 진작을 위한 전산교육, 사내 동아리 활성화, 여사원 승진 기회 확대 등 프로그램도 준비되고 있다.
백화점 매장들도 롯데백화점 개점 이후 달라진 대우에 어리둥절하다고 한다.
한 의류매장 관계자는 "예전엔 백화점의 고압적인 태도에 기죽어 살았는데 갑자기 밥을 사주는 등 다독거리는 모습이 역력하다"고 했다.
백화점 한 관계자도 "지금까지의 관례와 달리 매장 입점 수수료 인하를 요구하는 매장도 있는 등 백화점과 거래업체(매장)간 관계가 변하고 있다"고 했다.
롯데백화점에 맞서기 위한 지역 백화점들의 고객 서비스 경쟁 준비도 필사적이다.
동아백화점은 고객관리마케팅(CRM) 전담팀을 신설, 고정고객 관리에 나섰고, 우수고객 기준 확대, 주차권, 할인권 등 서비스를 확대할 방침이다.
대구백화점도 매장 서비스 모니터링팀을 신설, 매장 직원들의 친절도를 체크하고, 신세계백화점과 경영 전략적 제휴를 맺어 연수 및 교육을 강화했다.
여기에다 대구·동아 백화점 등 지역 백화점들은 '지역 사랑' 등을 내세우며 시민들의 '지역 심리'에 호소하고 있고 롯데 백화점도 이에 뒤질세라 '전국구' 백화점이란 장점을 살려 상품 차별성, 서울 업체와 연계한 기획 행사 등으로 맞서고 있다.
외지 기업 백화점이 대구에 문을 연 것이 신세계 백화점이 잠시 개점했다가 문을 닫은 이후 30여년 만에 처음으로, 앞으로 지역 백화점계의 구도가 어떻게 변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백화점 관계자들은 "현재 지하철 참사, 이라크 전쟁, 정권 교체 등 다른 요인들의 영향으로 롯데백화점 개점에 따른 여파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며 "오는 6월 이후쯤 되면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이호준기자 hop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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