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휴가증후군

서양 사람들에게 휴가는 길고 완벽한 휴식을 의미한다.

'바캉스'라는 프랑스어도 '비운다'는 뜻이다.

일요일은 유대인, 주말은 영국인, 바캉스는 프랑스인이 발명했다는 말이 있다.

프랑스인들은 휴가철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집과 직장을 떠나는 분위기라 한다.

우리는 그 사정이 사뭇 다르다.

조선시대에도 후기에는 폐지되기는 했지만 '급가(給假)' '급유(給由)'라는 공직자 휴가제도가 있었다.

그러나 노약한 부모를 찾아뵙거나 선조의 묘소를 돌보도록 하는 특별 휴가였을 따름이다.

이런 전통 때문인지 우리에서는 여전히 휴가문화가 정착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요즘 여름 휴가가 절정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여가생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에도 눈을 떠 샐러리맨들이 '어떻게 쉴 것인가'라는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되기도 했다.

실로 직장인들에게는 '휴식'과 '재충전'이라는 말만큼 솔깃하고 매력적인 말이 그리 많을까. 아무튼 휴가는 쉬면서 자신을 들여다보고 기분 좋게 놀되 열심히 일한다는 각오를 다질 때가 아닌가 한다.

▲그러나 즐거워야 할 휴가를 '지옥'으로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은 모양이다.

일하지 않는다는 불안감 탓으로 오히려 짜증나고 무료해지는 '휴가증후군' 때문이다.

심한 경우 자리를 비운 사이 직장을 잃지 않을까 불안해하고, 직장 일이 머리에 맴돌아 전화를 걸고 싶은 충동에 빠진다고 한다.

수시로 휴대전화를 확인하는가 하면, 뒷머리가 땅기거나 소화불량 증세를 일으키기도 한다.

▲물론 이 증후군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 증세의 사람들은 대부분 공격적이고 성취지향적이며, '일 중독자'가 많고, 소심한 성격의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 증후군이 동양권에서 유독 많이 나타나는 원인은 휴가를 휴식이 아닌 일의 연장으로 이해하는 문화가 조장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정리해고나 구조조정 대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위기감과 일자리에 대한 집착이 더 큰 원인이 아닌가 한다.

▲지난해 한 설문조사에서 '가능하면 여름 휴가를 돈으로 교환하겠다'는 사람이 응답자의 57.3%에 이르렀다.

아예 계획이 없는 사람도 33.4%나 됐다.

올해는 사정이 더 악화됐다니 우리의 삶이 얼마나 각박해졌는지 짐작이 가고 남는다.

더구나 지금은 '사오정(사십오세 정년)'과 '오륙도(오십육세까지 직장에 있으면 도둑)' 시대라는 자조적인 말까지 나오는 판이다.

휴가가 닳아진 배터리를 재충전하듯 뭔가를 새롭게 채워 넣기 위한 '비움'의 기간이라면 휴가증후군은 안타까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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