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리산 종주 권진태·노재왕씨

"저 자신의 한계에 도전해 보고 싶었습니다".

지난 추석 연휴기간의 악천후 속에서 70㎞가 넘는 지리산 태극구간을 46시간10분만에 종주한 지역의 아마추어 산악인 권진태(52.약사.대구시 서구 평리동 1218-1.청암당 약국)씨와 노재왕(40.세탁업.대구시 수성구 신매동 569의 1)씨는 입이라도 맞춘 듯 똑같이 말했다.

지리산 태극구간은 지리산 동쪽의 웅석봉(경남 산청군 단성면)에서 주능선인 천왕봉~노고단을 거쳐 덕두산(전북 남원시 운봉읍)까지다.

능선이 태극 모양을 하고 있어 태극구간이라 불린다.

도상 거리만도 70.7㎞에 달하고 실제 거리는 80㎞가 넘는 장거리 산행코스로 산을 자주 찾는 사람들도 보통 3박4일 또는 4박5일 일정으로 오른다.

전문 산악인이 날씨가 좋을 때 잠을 자지 않고 산행(무박산행)을 해도 40시간 정도 걸리는 코스다.

주말 등 짬을 이용해 산을 찾는 아마추어 산꾼이 지리산 태극구간을 만 이틀도 안되는 짧은 시간 안에 완주한 것도 의미가 있지만 이들의 '성공'이 비바람이 심하게 몰아치는 악천후 속에서 이뤄졌다는 것. 일부 산꾼들 사이에서는 '자연과 산을 너무 얕본 것 아니냐'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백두대간을 완주한 사람들의 모임인 백산산악회를 이끌고 있는 이들은 태풍 '매미'가 우리나라에 상륙해 폭우를 뿌리던 지난 12일 새벽 대구를 출발했다.

"원래 5명이 갈 예정이었는데 태풍이 오니 3명은 포기해 버리더군요".

권씨와 노씨가 전주에서 온 이태인(37).박학주(37)씨와 함께 웅석봉 밑 어천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한 것은 이날 오전 6시. 천왕봉을 지나 선비샘에 도착할 때까지 21시간 동안 등산로를 삼켜버린 폭우와 몸을 못가누게 하는 강풍이 계속 앞을 가로막았지만 이들은 계속 걸었다.

권씨는 "계곡 물이 산 위쪽으로 날려 올라갈 정도로 바람이 불었다"며 "지금 생각하면 너무 무모했다는 생각도 들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비바람이 조금 잠잠해진 뒤에는 졸음과의 전쟁이 시작됐다.

"몇 번 나무에 걸터앉아 잠시 눈을 붙였지만 눈꺼풀이 저절로 내려옵디다.

졸면서 걷다 나무에 박기도 하고 돌에 걸려 넘어지기도 했습니다". 노씨의 말이다.

결국 전주서 온 이씨는 새재에서, 박씨는 노고단 산장에서 산행을 포기해버렸지만 권씨와 노씨는 발검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들은 14일 오전 4시10분 태극구간 종주산행 종점인 구 인월 노인회관에 도착했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포기할 수 없었지요. 저 자신을 이기고 싶은 생각뿐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국내 8정맥' 완주와 함께 조만간 180㎞에 달하는 대구시계 산행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송회선기자 s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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