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낮 구마고속도로 달성 톨게이트를 나서자 곧바로 '가을'이 쏟아져 들어왔다.
코스모스가 한들거리고 제법 울긋불긋해진 숲이 차창밖에 펼쳐졌다.
하지만 상념은 순간. 산사태로 황토빛 속살을 드러낸 절개지가 나타났다.
구르다 만 바윗돌도 곳곳에서 보였다.
한달이 지났건만 태풍 '매미'는 아직 남아 있었다.
매미로 인해 달성공단내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구마고속도로변 수로 바로 아래편 공장지대. 급한 경사의 오르막을 오르던 중 귀를 때리는 소리는 기계 돌아가는 소음이 아니라 중장비의 굉음이었다.
땅을 파는 소리. 아직도 복구는 진행중이었다.
부근에서도 가장 피해가 컸다는 (주)에스케이텍스 앞마당. 지게차는 멎어 있고 흙탕물로 '염색된' 원단이 쌓여있었다.
한쪽에선 직원복을 입은 중년의 아주머니들이 원단을 씻고 있었다.
한달이 지났지만 복구가 끝나지 않은 것 같았다.
이 회사 대표 심충보씨는 사무실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표정이 좋지 않아보였다.
"복구요? 기계가 아직 안돌아갑니다.
수리한 뒤 겨우 시험작동하는 수준입니다".
그는 풍수해 보험을 든 덕분에 받은 보험금으로 겨우 숨을 쉬고 있다고 했다.
기계피해 10억여원은 보험금으로 겨우 한숨을 돌렸지만 완제품 피해 등 영업손실 10억여원은 융자금 5억원으로 급한 불을 끄고 있는 실정이라는 것.
"재해특구요? 정치인들 방문하고 기자들 몰려드는 곳이 재해특구입니다.
혜택은 하나도 없습니다.
엄청난 피해를 입었지만 재해특구 지정만해놓고 제조업체에 주는 것이라곤 융자 받아가라는 말이 전부입니다.
융자는 재해특구 아니더라도 받을 수 있는데 말이죠". 그는 여러가지 정황을 확보, 소송까지 생각하고 있다며 답답한 심정을 털어놨다.
이웃한 남선산업. 공장 내부 곳곳에 구멍이 뻥뻥 뚫려 있다.
물에 잠겨 못쓰게된 기계를 들어낸 자리다.
이 기계는 외상으로 구입한 것. 현장 관리자들은 기계값도 못줬는데 못쓰게 돼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이 곳은 공장의 주 동력원인 보일러실 작동이 아직 안돼 애를 먹고 있었다.
물에 잠긴 식당도 복구가 안돼 직원들은 식수를 외부에서 가져와 마셔야하는 것은 물론, 밥을 먹으러 먼 곳까지 가고 있었다.
"기계는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는데 보험금 받기 위해 준비해야할 서류작업때문에 날이 샙니다.
빨리 돈을 받아야 기계를 고치던가 새로 구입하는데, 이래서야 공장을 어떻게 정상화시킵니까?" 이 회사 김선곤 관리과장은 제조업체 태풍피해 지원 방침이 정말 말뿐이었다고 했다.
가장 고지대, 수로 바로 곁에 있는 명진사이징은 겉모습만 봐서는 문닫은 공장처럼 보였다.
문도 없고, 입구 옆 숙사겸 경비실은 완전히 폐허였다.
공장 안으로 들어서자 비로소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조업이 진행중이었다
"꼬박 11일동안 공장을 못돌렸어요. 공장 피해보상요? 물론 없죠. 침수때문에 전기점검을 원했는데 해준다고 하더니만 결국 못하겠데요.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겨우 전기점검 명목으로 45만원 받았습니다
우리돈 수백만원을 들여 전기점검을 했습니다.
국무총리까지 오셨지만 실질적 지원은 없었습니다". 유인복 대표는 너무 힘들어 공장을 그만둘 생각까지 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유 대표는 걱정이 또 쌓인다고 했다.
산사태가 언제 다시 일어나 수로를 통해 돌이 굴러올지 모른다는 것이다.
명진사이징 아래 대덕직물은 중장비를 동원, 복구작업이 진행중이었다.
입구를 새로 만들고 공장 외부를 고치고 있었다
"고치는 비용요? 우리돈 들이고 있죠. 다행히 기계는 돌리고 있는데 전자기판에 물이 들어가 가끔 기계가 섭니다.
수명이 짧아질까 고민이 됩니다". 이 회사 정흥택 차장은 태풍때 입은 영업손실이 자금수요가 몰리는 12월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며 연말 자금난이 고비라고 말했다.
한편 대구상공회의소는 태풍 피해를 입은 제조업체들에 대해 영업손실보상 등이 이뤄질 수 있도록 국회와 중앙정부, 대구시 등에 건의했으나 감감무소식이라고 했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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