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차한잔-계명대 노중국 교수

"백제부흥운동은 만 3년이나 계속되었는데 그 힘은 어디에 있었는가? 이것이 궁금했습니다".

국내 백제사연구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중진 고대사학자 노중국(盧重國.55)계명대 교수가 660년 8월에 나당연합군에 멸망한 백제가 일으킨 부흥운동 전개과정을 전반적으로 고찰한 단행본 '백제부흥운동사'(일조각)를 냈다.

노 교수에게 이번 책은 백제사 관련 단행본으로는 1988년 서울대 국사학과 박사학위 논문을 토대로 한 '백제정치사연구'에 이은 두번째.

"이전 책에서는 660년 8월 백제 멸망기로만 끝낸 아쉬움이 컸습니다.

백제는 고구려나 신라의 멸망 때와 비교할 때 부흥운동이 매우 치열한 모습을 보이며 기간도 3년이나 지속되었습니다

이것까지 어떻게든 손을 대야 백제사 전체의 체계를 어느정도 세울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 책에서 주목되는 점은 백제의 부흥운동을 '부흥군'이라는 시각에서 탈피해'부흥백제국'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부흥군이라고 할 때는 멸망한 것을 다시 일으키기 위한 군대 정도의 의미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백제부흥운동에는 군사조직 외에 왕이 있고 수도가 있으며 여러 장군을 비롯한 관료 조직을 거느린 엄연한 왕국이 있습니다".

이번 책에서 노 교수는 백제부흥운동 3년사를 3시기로 세분했다.

660년 8월에서 이듬해 9월 부여풍이 왕으로 즉위하는 1년을 '부흥군 활동시기'로 보는 한편 663년9월까지 2년간은 '부흥백제국의 시대'로 설정했다.

나아가 663년 11월, 당에 투항한뒤 백제토벌군 선봉대에 선 흑치상지 군대에 의해 지수신이 패배해 고구려로 도망할때까지 약 3개월간은 '최후의 항전시기'로 규정했다.

마지막으로 백제부흥운동을 진압하고 당군마저 축출한 신라가 어떻게 백제를 포섭하려 했는지도 주목했는데 이에 대해 노 교수는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신라가 여러 포용정책을 썼으나 사람을 등용하는데는 한계를 보였습니다.

저는 이것을 신라가 경주 중심의 한계성을 벗어나지 못한 증좌로 간주합니다". (383쪽.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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