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시장으로 신규 진입하는 연령이 낮아지고 있다.
봉급쟁이 정년이 38세로 낮아졌다는 의미의 '38선'이 현실화된 것이다.
'38선' 중에는 대구.경북지역 주력 산업인 섬유업계 퇴직자들이 특히 많다.
이들에게 재취업 카드를 내미는 기업도 없다.
그러나 절망은 금물. 가장 손쉬운 창업이라는 편의점 개업을 통해 '인생 역전'에 도전하는 '38선' 이야기를 들어봤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대구 산격동 유통단지내에서 '훼미리마트'를 운영하는 심상성(37)씨〈사진 왼쪽〉. 2002년 12월말 개업한 그는 문연 지 1년여 만에 월급쟁이 시절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있다.
편의점의 경우 겨울철이 비수기지만 심씨 가게는 요즘 월 매출이 4천500여만원에 이른다.
지난해 여름엔 월 매출이 6천500만원까지 올라 한달에 800여만원의 순수익을 챙기기도 했다.
심씨는 편의점이 이름 그대로 편안한 가게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가게 안에 들어선 손님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편리를 봐줘야 한다는 것.
심씨는 그래서 택배를 취급하고 현금출납기도 도입했다.
유통단지내에 공중전화기가 드문 것을 알고 공중전화까지 갖다놨다.
공공요금도 수납한다.
만물상이 된 것이다.
"물건종류만 2천500가지입니다.
편의점을 이용하는 고객들의 수요는 다양합니다.
그들의 기호에 맞춰가야죠".
그는 가게터를 잘 얻은 덕도 보고 있다고 했다.
대구전시컨벤션센터와 한국패션센터를 바로 옆에 두고 있어 '행사 수요'가 많다는 것.
"인터넷을 통해 전시컨벤션센터와 패션센터의 행사를 꼼꼼히 들여다 봅니다.
외국인들이 찾는 행사가 예정돼 있으면 거기에 맞춰 물건을 주문합니다.
덕분에 지난해 대구U대회 때는 외국인들이 저희 가게에 진을 쳤습니다".
심씨는 대학에서 화공학을 전공하고 구미의 한 대형 섬유업체에서 10년간 근무한 엔지니어 출신. 하지만 그는 2002년 5월 과장자리에서 정리해고 대상자가 됐다.
"하루는 현장에 있는데 윗분이 부릅디다.
'너도 나가라'고요. 속된 말로 '띵' 받치더군요. 내가 정리해고 대상자라니…".
그는 재취업에 희망을 걸었다고 했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몇 달 놀아보니까 갑갑하데요. 뭘 할지도 모르겠고, 창업했다가 돈 다 날리면 어쩔까 고민되고. 그런데 편의점이 괜찮다고 해서 단번에 계약해버렸습니다.
더 놀면 안될 것 같았습니다.
가게 얻고, 물건 사고 1억여원이 들었습니다.
아내는 말렸죠. 장사를 전혀 모르니 당연했죠".
그는 퇴직자들은 퇴직 후유증을 빨리 떨쳐야 한다고 했다.
심씨는 편의점에서 자리를 잡자 요즘은 전공 분야의 몇몇 회사에서 재취업 제의까지 들어온다며 편안한 마음에서 미래를 다시 설계하고 있다고 했다.
▨체면은 없다
대구 성서공단의 한 섬유회사에서 공장장으로 일했던 성창은(37)씨. 그는 지난해 9월부터 대구 비산동의 훼미리마트 비산제일점 점장으로서 새 인생을 살고 있다.
월 매출은 3천500만원 정도. 겨울 비수기인 점을 감안하면 개업 초기로는 괜찮은 편이다.
개업 첫달 그는 280만원을 벌었다고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장사에 손댄 성씨지만 나쁜 성적표가 나오진 않았다.
프랜차이즈 가입비와 가게 보증금 등을 합쳐 7천여만원을 초기 투자했다.
퇴직금과 모아둔 돈 등을 집어넣었다.
빚을 내는 창업은 절대 안된다는 것이 성씨의 원칙.
"손님이 원하는 물건은 모조리 리스트를 만드는 방법으로 다른 편의점과의 차별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이러다보니 가게 안의 물건 숫자가 자동적으로 늘어납니다.
물건 수가 늘면 진열이 어려워지는 등 제가 움직여야 하는 빈도가 증가합니다.
하지만 리스트를 잘 만들어 관리하니 단골손님이 늘어나더군요".
심씨는 잘 팔리는 물건을 빨리 파악해 갖춰놓으니 매출이 재빨리 상승하더라고 말했다.
요즘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브랜드만 찾는다는 것. 심지어 라면조차도 자신이 찾는 라면이 아니면 안 먹는다는 것이다.
그는 아르바이트생 관리도 잘 해야한다고 했다.
아르바이트생이 가게 이미지를 흐릴 수 있다는 것.
"지난해 4월 회사가 문을 닫았습니다.
흑자 상태였는데 경영주가 갑자기 회사 문을 닫겠답니다.
섬유는 골치만 아플 뿐 노력만큼의 성과가 안 나온다는 것이죠. 충격요?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제 회사가 문을 닫을 줄 정말 몰랐습니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성씨는 섬유 분야 경력자의 재취업 자리도 없더라고 했다.
섬유 창업도 생각했지만 자금이 엄청나게 필요했다.
"몇 달 놀면 가장 괴로운 것이 아침에 갈 곳이 없다는 겁니다.
공장장으로 일할 때 오전 6시에 일어나 회사로 나갔는데 회사가 문을 닫으니 6시부터 할 일이 없었어요".
그는 무엇이든지 빨리 시작해야한다고 했다.
편의점 창업도 생각하자마자 가게를 알아보러 다녔고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시켜 문을 열었다.
이젠 장사가 어떤 것인지 감을 잡았고 곧 편의점을 한 곳 더 낼 생각이다.
"체면요? 공장장이라는 옛날 기억은 빨리 버려야 합니다.
저는 아침부터 가게 청소를 하고 물건 발주를 직접 넣고, 선물세트를 들고 외부에 팔러다니면서 바쁘게 살아갑니다.
이젠 삶이 다시 즐거워졌습니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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