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추락 지역경제 탈출해법 찾자-(5) 민간단체의 역할

차별화된 경쟁력을 지닌 지역을 방문해 보면 '공기부터 다르다'는 평가를 하게 된다.

그 지역에 있으면 사업이 절로 잘 된다는 평가를 받도록 소위 '위치적 경쟁우위(positional advantage)'를 구축하는 것이 지역혁신의 핵심과제이다.

미래를 책임질 신산업을 일으키고 전통산업을 첨단화하려는 과업의 핵심은 이러한 지역의 '공기'를 개혁하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특히 민간의 아이디어와 역량을 모으는 과정 자체에 지역혁신시스템의 성패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진모델을 따라만 하면 성공할 수 있었던 과거에는 정부가 법과 제도를 만들어 주도해 나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판이하게 다르다.

혁신이란 독특한 아이디어의 실현으로서 재현하기가 어렵고 당사자가 아니면 파악하기가 곤란하다.

그러다보니 범용적인 정책지원만으로는 차별화된 지역의 '공기'를 만들어 낼 수 없다.

그렇다고 지자체가 민간의 의견과 협력을 구한다고 나서도 공청회 수준의 의견수렴을 벗어나기 어럽다.

지역의 분위기와 질서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기술혁신의 최전선에 있는 민간부문 각자가 지역발전과 자신의 이익을 동일시하는 인식전환이 있어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혁신에 걸림돌이 되는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내어 참신한 정책대안들을 스스로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민간의 참여와 이니셔티브를 끌어내는 것은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사적 이익이 우선시되는 개별적 존재로 구성된 민간으로부터 자발적 참여와 공동협력을 이끌어 내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민간섹터의 기능이 활성화만 되면 지역경제를 위한 폭발적 에너지를 마련할 수 있다.

민간섹터가 제 기능을 다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민간부문 스스로의 선도적 노력이 필수적이다.

첫째, 혁신기업들이 자각해야 한다.

즉 혁신이란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하며 자신의 혁신을 지원하는 생태계를 조성하려는 노력에 동참해야 한다.

기술의 복합화 및 융합화 추세로 인해 가장 잘 할 수 있는 핵심역량 이외의 부분은 외부 생태계와의 협력관계에 의존하게 된다.

'위치적 경쟁우위'가 중요한 이유도 특정 지역에 위치하면 바로 이러한 외부 협력관계가 눈에 안 보이는 이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특히 초창기 발전단계에서 선도적 위치에 있는 소수의 선배기업들의 헌신적 노력은 지역발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마련이다.

둘째, 협회 및 지역단체들이 산업계, 지방정부, 대학 간 수평적 협력관계의 구축을 위해 제 기능을 다해야 한다.

기술적으로 앞서 나가던 보스턴 지역이 실리콘 밸리에 추월당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지역 경제단체들이 집단이익만을 추구하여 정부로비에 급급했던 데 있었다.

이에 비해 '실리콘밸리 조인트벤처'와 같은 단체들은 산업계, 학계, 환경단체, 지자체 등의 아이디어와 역량을 모아 생태계 자체의 건실한 성장을 추구했다.

특히 상공회의소와 같은 기존의 경제단체들은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 자기 혁신이 절실히 필요하다.

지역의 다양한 신생협회나 단체들과 대립적 경쟁관계에 서기보다는 공동 협력사업이나 협조관계를 통해 기능적 쇄신을 이루어 나가야 할 것이다.

셋째, 금융기관의 혁신적 노력이 중요하다.

아무리 훌륭한 혁신이라도 사업화를 지원하는 금융시스템이 없으면 사상누각이다.

하지만 우리의 금융시스템은 지역에 차별화되어 있지 못한 실정이다.

영국 케임브리지 지역도 벤처캐피탈회사는 있어도 지역 벤처기업의 높은 위험도에 맞춘 금융서비스의 개발과 투자 노하우가 없었기 때문에 벤처산업이 활성화되지 못했다.

한편 금융회사들은 어느 때보다도 치열한 경쟁 환경 속에서 생존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지역혁신이 하나의 대세라면 여기에 맞춘 차별화된 금융서비스의 개발은 금융기관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지역혁신추진기구와 같은 상위의 민간기구가 제 기능을 다하도록 설립 시부터 역점을 두어야 한다.

앞으로 민간의 협력관계가 활성화되고 복잡해질수록 여러 협회와 단체들이 참여해야 하는 상위 기구들이 만들어질 것이다.

특히 지역혁신에 관련된 정책을 다룰 민간기구의 설립이 눈앞에 와 있다.

이러한 민간기구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는 것은 지역혁신의 향후 10년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여러 민간단체들간 상호작용과 협력사업도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손을 잡고 나서도 민간섹터가 적극적으로 정책 제안과 실천 과정에 참여하지 않으면 실패하기 십상이다.

밀라노 프로젝트가 막대한 예산투여에도 불구하고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도 민간섹터가 제 기능을 담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고부가가치 섬유산업으로 탈바꿈하길 원한다면 고부가가치 신사업을 하는 기업과 단체들이 중심에 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첨단산업을 유치하려다 실패한 지역들을 보면 의외로 훌륭한 대학과 연구소, 좋은 제도 및 주거환경 등을 갖춘 경우가 많다.

이는 개별요소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적 첨단 클러스터를 가진 지역들의 공통점은 이러한 개별요소 간 상호작용이 왕성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호작용은 무엇에 의해 촉발되었는가. 정부정책에 의해서? 언론홍보에 의해? 우연히? 이것들도 중요했지만 결정적 역할은 역시 민간섹터가 담당했다고 할 수 있다.

세계적 소프트웨어단지를 구축한 인도의 뱅갈로르에서는 소프웨어기업협회(NASSCOM)의 자발적 제도개선 노력과 정책대안의 제시가, 대만의 신주단지에서는 CIE, MJSTA 등 과학자 및 엔지니어들의 모임이 실리콘밸리와의 인적 가교역할을 함으로써 새로운 기술과 유능한 인재의 공급창구가 되었다.

테헤란밸리를 중심으로 한 한국의 벤처산업 발전도 1996년부터 체계적 정책제안을 해 온 벤처기업협회의 역할이 컸다.

또한 최근 유럽의 지역혁신 사례가 주목을 받고 있다.

30여 년 동안 유럽은 지역혁신체제의 구축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이태리의 에밀리아 로마냐 지역은 2차 세계대전 직후만 해도 농업이 주산업이었으나, 지금은 섬유, 의류, 신발 등을 중심으로 국제경쟁력을 갖춘 수출지향 산업구조로 탈바꿈했다.

이러한 혁신체제구축의 성공에는 지역개발기구인 ERVET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이 기구는 지방정부와 지역의 민간 경제주체들이 공동출자해서 설립되었다.

이것의 주된 기능은 지방정부를 대신해 지역개발 전반에 대한 정책의 개발과 실행이며, 동시에 기업들의 성장과 혁신을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서비스 센터의 설립과 운영을 맡고 있다.

한 마디로, 유럽의 지역개발기구는 민간섹터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제도적 장치가 됨으로써 지역경제 활성화에 일대 전기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피폐한 지역경제에 새 살이 돋아나게 하기 위해서는 역시 말단 세포들의 자생력을 확보해야 한다.

즉 민간의 혁신능력과 생태계 구축을 위한 자발적 참여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혁신기업들이 자신의 성공과 지역의 제도적 환경이 사실상 긴밀히 연결되었다는 자각이 필요하다 또한 소속 협회나 단체들이 집단이기주의에 치우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내부적으로 집단학습이 활발히 일어나도록 하고 외부적으로는 지자체나 다른 경제사회단체들과의 협력관계를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와 함께 민간부문들의 참여와 협력을 지원하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도 중요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지역개발기구의 설치와 지역혁신을 지원하는 금융시스템의 정비 등은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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