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헌태의 백두대간 종주기 (26)-속리산 종주(7)

7.

이날 산행 속도는 이헌태로서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대간 주변의 산악을 감상하느라 또 초반 산행에 약한 탓에 늘 뒤쳐져 대장에게 꾸지람을 들었지만 이번 산행은 눈길과 암벽길이라서 일행 전체가 속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어 자연 느긋하게 따라붙을 수 있었다. 나에게는 안성맞춤의 속도였다.

속도도 느려지고 구경도 맘껏하고 '이헌태를 위한 대간산행' 같았다. 게다가 이번 산행은 '백설공주' 와 함께 하는 '백설산행' 은 아니고, 훨씬 더 좋은 흰 눈과 함께하는 '백설산행', 그것도 '백설 비경 산행'이어서 더 유쾌했다.

나중에 들으니 이번에 내린 눈은 한반도 전체에 동시에 내렸다고 하네요. 한라산 백록담을 시작으로 남녘땅과 북녘땅을 거쳐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까지 전국에 걸쳐 빠짐없이 눈이 내린 것은 참 드문 일이라고 하네요. 이 작은 국토에서도 한꺼번에 눈 축복을 받기는 힘든 모양이네요. 한반도가 작으면서도 크고 크면서도 작고만. 뭐야. 하기사 부산은 겨울에 눈 보기가 그렇게 쉽지 않다고 하니.

밤티재를 떠나서 숨이 턱에 찰 정도로 땀 흘려 연신 오르니 오전 8시 25분 발아래

전망이 훤히 보이는 첫 자그마한 묏부리에 올라섰다. 대장님과 앞서 나가는 팀들이 벌써 짐을 풀고 코펠과 바너를 꺼내고 있었다. '즐거운 아침식사 시간' 이렸다. 라면과 김밥과 쐬주를 돌리면서 설산의 산흥을 즐겼다.

문장대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하늘 높이 치솟은 바위가 흰 구름과 맞닿는다 하여 문장대를 일명 운장대(雲藏帶)라고도 한 이유를 알았다.문장대는 세조가 매일 올라와 시를 읊었다고 하는데서 비롯되었다고 하네요. 문장대에 세번 오르면 극락간다는 전설도 있다고 하네요. 그건 완전 뻥이다.확실 ,확실 ,확실합니다. 이헌태 모처럼 자신감에 넘치네. 저도 세번이상 올라왔거든요. 그런데 제가 극락을 간다고요. 천부당만부당합니다. 뭐야. 니 자신을 그렇게 학대하냐.

사방 경치가 어떤 줄 상상해보셨습니까. 서울 야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서울시내 모 최고급 호텔의 최고급 식당에서 한국 최고의 미인과 단둘이 정답게 식사하는 것과도 비교가 전혀 되지 않습니다. 더 좋은 전망과 더 좋은 기분 속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고 보면 틀리지 않습니다. 선경 (仙境) 속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고 보면 되지요. 아, 세상 부러울 게 없구나. 그런데 왜 이런 종주기에 최고의 미인이 들어가냐. 죄송합니다.

"산은 우람한 풍모, 몸짱, 바위는 수려한 얼굴, 얼짱이다. 나무는 고운 자태, 눈은 하얀 살결, 바람은 청냉기운, 사람들은 순수와 순결한 마음이다. 눈 덮힌 속리산과 인간 이헌태의 합일(合一) 이라고나 할까"

갑자기 하늘에서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면서 나아갈 방향에 우뚝 서있던 문장대를 위시한 속리산 높은 봉우리들이 갑자기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미 한폭의 설산 동양화를 맘껏 구경했고 그 감동을 가슴 속에 담아두었기 때문에 약간 아쉬울 뿐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은 아니었다.

식사 도중에 우리 뒤를 따라온 모양인지 같은 코스로 진행하는 백두대간팀이 도착했다. 지금까지는 우리 팀이 길을 내면서 나아 왔지만 이제부터는 저 팀이 낸 길을 편하게 따라가면 되겠구나. "길 잘 내주세요"라면서 감사겸 인사겸 정분을 서로 나눈다.

이번 산행은 갈 길이 멀어서 그런지 대장님이 빨리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보통 한시간 식사시간이지만 이날 따라 35분여분만에 짐을 정리하고 오전 9시 다시 길을 나섰다. 문장대가 바로 저기 보인다. 이를 악물고 꾸준히 오르기만 하면 되리라.

올라갈수록 눈발이 더해진다. 눈꽃도 아름답기 짝이 없다. 나무 가지마다 다 덮었다. 나무를 보호하는 그 착한 마음, 인간으로 하여금 순결, 순백의 의미를 되새겨주는 그 진지성, 세상을 하얗게 물들이게 하는 그 순수성. 온 산과 온 나무들에게 흰 색을 입혀 고귀하고 기품있는 용모를 지니게 하는 그 예술성. 눈과 눈꽃은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치지가 않다.

정상에 높아질수록 내린 눈의 양도 많고 눈꽃도 더 두텁고 아름답다. 눈꽃이 이제 나무와 나무가지를 위쪽 한 부분이 아니라 빙 둘러 온 몸으로 감싸고 얼었다. 상고대를 화려하게 만들었다. 나무가지에 붙은 눈꽃이 하얀 사슴 뿔 모양으로 되살아나 조각품을 연출했다. 패션디자이너 김봉남씨. 뭐야. 다시 '앙드레 김'이 이 산에서 패션쇼를 한번 가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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