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출 2백억불 금자탑 구미-(1)구미의 고속성장

설을 지났지만 2월의 아침 6시30분은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았다.

이때부터 경부고속도로의 남구미나들목과 대구~김천간 국도 구미진입구간은 물론, 구평.진평.인동 등지에서 일터를 찾아 구미공단으로 들어오는 차량들로 긴 행렬이 이어진다.

수출한국, 그 저력의 한 단면이다.

구미공단은 지난해 수출 200억달러를 돌파했다.

낙동강변 작은 시골마을 선산군 구미읍에서 1978년 시로 승격한 지 25년만에 구미는 인구 36만명의 공업도시로 탈바꿈했다.

구미공단과 함께 성장해 온 것이다.

대부분 지방 도시들이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현실에서 구미는 오히려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젊은 사람들이. 그래서 구미는 인구 50만명의 중추 산업도시를 향한 발길을 재촉하고 있다.

구미의 고속성장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걸림돌은 무엇인가. 구미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해본다.

〈편집자〉

정적. 숨이 막힌다.

1,000평도 넘어 보이는 넓은 공장안은 첨단 생산 시스템에서 토해내는 LCD(액정화면) 완제품이 포장되는 소리로 '현재 가동중'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브라운관이 사라지고 LCD와 PDP가 그 자리를 메우면서 '손'으로 하나하나 꿰어맞추던 공정들이 대부분 자동화됐다.

그러나 근무자들의 집중도는 오히려 더욱 증가됐다는 공장 관계자의 설명이다.

숨가쁘게 돌아가는 첨단 생산공정이 쉼없이 완제품들을 토해내고 공정 중간 중간에서 이를 지켜보는 사원들의 눈은 한 순간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번뜩인다.

지난 1999년 9월에 LG와 네덜란드 필립스가 합자해 출범한 지 3년만에 세계시장 점유율 19.2%라는 엄청난 실적으로 당당히 업계 세계 1위를 차지한 'LG Philips LCD'의 생산 현장이다.

초일류 기술을 고스란히 집약해 제품을 만들어내는 현장 근로자들을 만나기 위해 몇 단계의 익숙지 않은 과정을 겪었다.

촬영장비와 손을 깨끗이 소독하고 방진복장으로 중무장하고서야 현장에 진입할 수 있었다.

'청결'. '정돈' 등 한치의 오차도 허용치 않음을 느꼈다.

김수형(23.5세대 검사팀)씨는 "품질혁신을 통한 세계 초일류 품질을 구현할 것"이라며 단 0.001%의 오차도 없는 품질검사에 여념이 없었다.

그는 "No.1은 1등 품질로 고객의 만족뿐 아니라 경쟁사와도 명확한 품질 격차를 확대해 나가는 것"이라 야무지게 답한다.

이들에겐 방진복장의 답답함도 아무런 장애가 되질 않는다.

단 하나의 먼지가 첨단제품을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생산성 혁신을 통해 세계 1등 기업의 1등 직원이라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져 있다

LG필립스LCD 5세대 생산라인 현장 근로자들은 세계시장 점유율과 품질에서 지속적인 1등 유지를 위해 최근 새로운 과제에 몰두해 있다.

그동안 양적 성장으로 이룬 1등을 이제는 질적 1등으로 유지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생산현장 근로자들은 저마다 추진과제를 설정해 도전과 혁신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공장 밖으로 나오자 곳곳의 벤치에 삼삼오오 짝을 지어 자유롭게 얘기하면서 웃고 떠들어대는 사원들의 모습에서 회사 전체의 생동감이 파릇파릇 돋아남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근무 시간에 밖에서 떠들어도 상관없느냐?"고 한 남자 사원에게 물었다.

그는 그렇게 묻는게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 "생산배가를 위해서는 휴식도 배가해야 한다"며 "맑은 정신이 있어야만 티없고 깨끗한 제품을 만들 수 있기에 여가는 충분히 즐기고 있다"고 말한다.

대답속에는 당당한 자신감과 '1등기업의 1등 직원'이라는 자부심이 그대로 녹아 있다.

사무실의 근무 모습은 더욱 당당하다.

일반적인 넥타이에 와이셔츠 차림의 정장을 생각했지만 옷 차림에서부터 개성과 자유로움이 묻어있다.

어떤 이는 책상에 엎드린 채 무언가에 골몰해 있다.

또 어떤 직원은 의자에 깊숙이 몸을 파묻은 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자유로움 속에서도 끊임없는 긴장과 생동감, 넘치는 활력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5공장 맞닿은 6세대 생산라인. 올 8월쯤에 본격 가동될 6세대 생산라인이 한창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이 라인이 본격 가동될 경우 LG측은 2천여명의 고용효과로 LCD TV용 제품을 30인치에서 42인치, 52인치, 55인치로 확대해 기술력에서도 세계 1위로 자리굳히고 시장점유율도 28.6%로 끌어올려 일본 샤프를 뛰어넘는다는 계획이다.

5세대 생산라인 혁신팀장인 김경호 차장은 "단기간에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세계시장의 50%를 차지하던 일본 샤프를 공략목표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생산성 배가운동을 포함한 '혁신'에 전사원이 똘똘 뭉쳤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변화하는 세계 시장에 대응하는 적극성. LG필립스LCD의 생산현장에서 만난 이들에게서 구미의 저력과 힘을 볼 수 있었다.

LG필립스LCD 5세대 생산라인을 빠져나와 수출로를 따라 구미대교를 넘어서자 우뚝솟은 LG전자 건물과 한국전기초자를 비롯, 구미공단을 지탱하고 있는 수많은 협력업체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결과적으로 삼성과 LG 등 일부 대기업들이 수출 200억달러에 차지한 역할이 전부라고만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들이 세계시장에 내놓은 완제품에는 500여곳이 넘는 구미공단 협력업체(중소기업)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구미중소기업협동조합 이장범 이사장은 "구미공단에 입주한 중소기업들을 통하면 어떤 부품이든지 20분이면 조달할 수 있을 정도다"며 "삼성.LG의 세계시장 점유 최일선에는 중소업체 직원들의 밤낮없는 노력이 숨어 있다"고 했다.

하루종일을 다녀도 끝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이어지는 공장 굴뚝과 기업체들. 부품과 완제품을 실어나르는 컨테이너와 탑차들. 그 속에서 하루 24시간을 넘어 25시간을 땀방울로 가득 채우고 있는 산업역군들. 그들의 머릿속에는 수출 200억달러 신화가 자신들의 손에서 마무리되고 이제 새로운 신화에 도전하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가득하다.

구미.엄재진기자 2000j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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