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또 한가지의 개념적인 혼란이 만연돼 경제, 문화, 정치의 발전에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
진보니 보수, 자유니 민주니 하는 단어들이 정치인이나 학자들에 의해 아전인수격으로 사용되고 있는 데, 그에 못지않게 혼란을 초래하는 개념이 '평등'이다.
'평등'은 아무런 수식어 없이 무조건 '동일함'으로 해석될 수는 없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개개인이 신체 조건에서 뿐만아니라 지능과 감성에서도 다를 수밖에 없다.
만일 모든 인간이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것처럼 동일하다면, 세상은 얼마나 재미 없을까. 결국은 인간사회에서의 평등의 문제는 '기회의 평등'일 수밖에 없다.
왜곡된 평등의 개념적인 이해는 한국 사회에 이미 몇 백년 전부터 뿌리 깊게 자리잡아 왔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격언에서만 봐도 알 수 있다.
지금 한국의 대학 사회에서 누구나 알고 있지만 쉬쉬하는 비밀이 있다.
즉, 대학교수 임용에서 당사자의 성취나 능력이 최종적인 임용 기준이 아니라, 선임교수들의 연줄을 타거나 돈을 상납해야 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어떤 교수가 탁월한 능력을 입증하였다면 그것은 오히려 임용에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왜? 선임교수들이 상대적으로 왜소해 보일 소지가 있으므로. 그러니 그 대학의 그 학과에는 그저 그런 능력의 교수들끼리 모여 적당히 편안하게 교수로서의 사회적인 지위를 누리며 살아가자는 위선적인 태도와 철학을 대변하는 것이 아닌가.
왜곡된 평등의 개념은 국가의 공적 자금의 낭비와도 직결된다.
정부에서는 미래 산업 발전을 이런저런 방향으로 선도하기 위하여, 올해부터 정보통신산업연구 분야와 나노기술 분야에 몇 천억, 몇 백억원의 예산을 연구.개발자금으로 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이런 자금을 타는 사람들이 한국 사회에서는 가장 준비가 잘 된 전문가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신 갑자기 이런저런 분야의 전문가를 자처하는 지적 사기꾼들이 나타나서는, 별별 연줄을 찾아, 온갖 로비를 펼쳐 엄청난 정부 연구.개발 자금을 타간다.
그 자금들이 쓸데 없는 전시적인 장비 구입과 엉터리 전문가들의 개인적인 소비용으로 나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전문성 없는 공무원들이 요식적인 행정절차만 만들어 그 엄청난 액수의 돈을 주무르니, 누가 진짜 이런 자금을 타야 되는 지 판단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그 한 예로, 정통부 산하의 한국정보통신산업진흥원에서, 한국 디지털산업의 국제화를 도모하기 위해 해외에서 교수를 초빙하고 우수한 대학원생을 유치하면 장학금을 지급하는 정책이 있다.
그러면 우수한 해외유학생을 누가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 하나 없이 공무원들이 관료적인 요식절차만 만들어 놓았다.
미국의 일류대학인 UC Berkeley에서 영화를 전공한 뒤 훌륭한 영화를 만들고 게임 관련 잡지사의 기자와 부편집자로 일한 경험이 있는 학생이 지난 12월 정통부의 해외유학생 유치 장학금을 신청했다.
이 학생이 어떤 학생영화를 만들고 잡지사에서 어떤 창의적인 프로젝트를 수행했는지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이,이 학생의 평균 학점이 2.85였다는 것만 갖고 장학금 지급을 거부했다.
아니, A대학의 학점이 B대학의 학점과 절대적인 비교가 가능한 것인지도 알아보지 않고, 평균학점 2.85라는 것 하나만으로 결정하는 바보같은 평가나 하는 것이 한국의 실정이다.
1990년대 초 필자가 MIT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 때 한국인 학생회장을 하던 친구가 MIT에서 재료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의 유수한 연구소에서 일하다가 서울의 모 일류대학에 교수로 와 있는데, 내가 부산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적이 있었다.
나노기술에 대한 정부의 후원이 발표되면, 일년사이에 나노 기술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몇 백명이 나타나더라며, 당혹해 하면서 고민하는 것이었다.
즉, 자기처럼 제대로 연구한 사람한테 자금이 가기보다는 엉뚱한 사람들한테 간다는 것이다.
진짜 실력있는 사람은 엉터리들이 자금을 탄 다음에 재채용되어 진짜가 가짜밑에서 일하게 되는 악순환이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지금 한국 사회의 비극이다.
이 모든 것이 왜곡된 평등의 개념적인 이해가 만연되면서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홍가이(경성대 해외석학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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