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윤달 '타령'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역법(曆法)은 '그레고리력(太陽曆)'이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공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인 1년이 365.24일이기 때문에 대체로 4년마다 하루, 정확히는 400년간 97일이 윤일(閏日)이다.

연도를 나타내는 수가 4로 나눠 떨어지는 해는 윤년(閏年), 100으로 나눠 떨어지는 해는 평년이나 400으로 나눠 떨어져도 윤년이다.

한편, 달의 차고 이지러짐을 기준으로 한 태음력(太陰曆)으로는 1년이 354일이므로 8년마다 석 달 정도가 모자란다.

이 때문에 19년 동안 7번의 윤달(閏月)을 넣어 책력과 계절을 맞추게 되므로 3, 4년마다 추가로 1개월(27~29일)이 늘어나게 된다.

▲음력 윤달은 우리 조상들에게 '해방의 달'이었다.

'덤달' '여벌달' '공달'로 불리기도 한 윤달에는 집수리.이장(移葬). 산소 단장.수의(壽衣) 마련 등 평소에는 쉽게 하지 못하던 일들을 거리낌 없이 했다.

신(神)들이 1년 열두 달을 꼬박 관장하지만 열세 번째 달엔 간섭할 귀신이 없다고 믿었던 탓이다.

가외로 더 있는 달이므로 부정(不淨)이나 액(厄)과 거리가 먼 것으로 인식돼온 셈이다.

▲오는 3월 21일부터(4월 18일까지)의 음력 2월 윤달을 앞두고 관련 업계의 희비(喜悲)가 엇갈리고 있는 모양이다.

'윤달에 수의를 마련하면 장수한다'는 속설 때문인지, 수의 제조업체들은 전에 없는 호황이다.

벌써 쏟아져 들어오는 주문 때문에 대부분의 업체들이 야근까지 하고 있을 정도이며, 한 벌에 70만원 정도인 한지 수의 주문량도 70% 가량이나 늘어나 '즐거운 비명'들이라 한다.

▲하지만 예식장을 비롯해 야외촬영.청첩장 제작사 등 결혼 업체, 이삿짐센터 등은 '윤달 불황'에 시달리고 있어 대조적이다.

예식장들은 주말 예약이 뚝 떨어져 예식료를 깎아주거나 기념품 공세를 펴보아도 효과가 없다고 한다.

해마다 3, 4월엔 주말 예약을 사양해야 할 정도로 대목을 누렸던 이삿짐 업소들도 허덕이기는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업자들은 '윤달에는 재수가 없다'는 '재수 없는 말을 언제 누가 만들었느냐'고 비아냥대는 소리도 들린다.

▲옛 사람들은 손재(損財)가 없다는 윤달에는 그야말로 모든 습속으로부터 자유로웠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결혼하면 흉하다' '아기를 낳으면 좋지 않다' '이사하면 재수 없다'는 등 '좋은 일'을 기피하는 경향은 이미 오래됐다.

'좋은 게 좋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누구나 속설에서마저 자유롭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일부 술객(術客)들과 얄팍한 상술(商術)이 어우러져 터무니없는 속설을 퍼뜨려 온 건 아닌지 모를 일이다.

아무튼 언제나 그렇듯이, '덤'이나 '공짜'가 말도 많고 탈도 많은가 보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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