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국궁-마음을 비우고 나를 쏜다

가슴은 비우고 배에 힘을 준다.

두 발을 안정히 디딤하고 과녁을 향해 조준한다.

그리고는 짧은 침묵. 밀고 당기는 두 팔의 평형상태에서 활 시위를 놓는다.

'피융!'하는 소리와 함께 화살은 145m 떨어진 과녁을 향해 날아간다.

그러나 사수는 정작 앞에 보이는 과녁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으로 화살을 쏘았다.

화살끝에 정심정기(正心正己)를 싣고 정갈하지 못한, 욕심과 미련으로 가득찬 심중에 명중시켰다.

대구 수성구민운동장 뒤편 야산에 자리한 팔공정(八公亭). 추운 날씨에도 전통무예인 국궁(國弓)을 즐기는 궁사들의 발길로 붐빈다.

8일에는 매달 한차례씩 회원들이 기량을 겨루는 월례대회가 열렸다.

김무석 팔공정 고문은 "국궁은 중.장년층이 주로 하는 '원로스포츠'로 알지만 남녀노소 누구나 한 두 달이면 배울 수 있고 화살이 과녁에 '딱' 맞는 순간 그 무엇에도 비유할 수 없는 통쾌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국궁은 145m 떨어진 과녁을 맞혀야 한다.

한번 활을 잡으면 한 순(巡), 5발을 연속해서 쏘고 모두 열 순을 쏜다.

한 대의 화살을 쏘려면 온 몸이 긴장해야 한다.

겉보기에는 두 팔로 하는 듯 보여도 힘이 많이 드는 전신운동이다.

아랫배에 힘을 준 상태에서 한 손으로는 활을 말고 다른 손으로는 시위를 당긴다.

이때 두 다리를 땅에 딛고 굳건히 서야 한다

퇴직교사인 배윤근(74)씨는 "국궁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모든 근육을 사용하는 전신운동"이라며 "숨을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은 상태에서 활을 당길 때 기를 모으고 쏠 때 기를 풀어주어 자연스럽게 단전호흡이 된다"고 활쏘기를 예찬했다.

국궁에도 단계가 있다.

초단에서부터 9단까지 있고 5단 이상을 명궁이라 부른다.

입.승단대회를 통해 단이 오르지만 명궁이 되려면 품성까지 심사할 정도로 예(禮)와 도(道)를 중시한다.

◇젊은 층, 여성에 더 좋은 운동=최근에는 젊은 층과 여성들도 국궁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신세대 궁사 김재해(27)씨. 활을 잡은 지 14개월 된 대학생이다.

활터를 자주 지나치다 용기를 내 배우기 시작했다.

편한 시간에 언제든지 활 시위를 당길 수 있고 몸과 마음의 상태에 따라 적중률이 천차만별인 것이 너무 매력적이다.

기량을 뽐내려거나 욕심을 낼 수록 더 빗나가고 화살끝에 마음이 실렸다고 생각하면 명중되지 않아도 만족감이 든다.

그는 "맑은 공기를 호흡하며 날아가는 화살에 마음을 싣고 어른들의 지혜를 배울 수 있어요. 젊은 친구들이 많이 배웠으면 좋겠어요".

6년 경력의 주부 김정순씨(43.수성구 범어동)도 국궁의 매력에 푹 빠졌다.

김씨는 "호흡이 가쁘고 관절이 좋지 않았는데 언제인지 모를 정도로 자연스레 나았다.

활쏘기는 바른 자세를 길러 주고 위장병이나 심폐기능을 높이는 데도 확실히 좋다"고 말했다.

◇어디서, 어떻게 배우나=최근 젊은 층으로 동호인들이 확산되면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레포츠로 자리잡고 있다.

대구지역 활터는 팔공정(053-752-9604)과 앞산순환도로변의 관덕정(053-656-4664) 등 두 곳. 두어 달 동안 활시위를 당기는 자세와 호흡법을 배우고 나면 혼자서도 사대에 설 수 있다.

강습기간에는 활과 화살 등 기본 장비를 대여해 준다.

초보자는 계량궁을 쓴다

재료는 FRP나 나무(아카시아.단풍.뽕나무 등). 가격은 20만~30만원선이다.

플라스틱 활은 개당 7천원, 대나무 화살은 개당 3만원이고 깎지는 2만원 내외. 보급형의 경우 35만원선이면 장비일체를 갖출 수 있다.

경력이 쌓이면 파운드(무게)를 늘리고 각궁(角弓)을 쓰게 된다.

물소뿔과 소 힘줄, 뽕나무 뿌리 등으로 만든 전통 각궁은 60만원선.

국궁장은 회원제로 운영되며 입회비가 있다.

남자 20만원, 여자 10만원. 학생은 6만원선으로 365일 즐길 수 있다.

이춘수기자 zapp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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