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미국집

어릴 때 학교 앞에 미국사람이 산다는 집이 하나 있었다.

워낙 작은 고장이라 서양사람 구경하기가 장날 약장수 원숭이 구경보다도 어려웠기에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어느 봄날 바로 그 집이 들어섰을 때 또래들은 호기심에 몸살을 앓을 지경이었다.

게다가 이미 그 집에 서양인형 같은 여자애가 하나 있고 가끔 햇빛이라도 좋은 날에는 비키니만 입고 나와 잔디에 물을 뿌린다는 소문도 있었던 터였다.

그러나 인형 같다는 여자애는커녕 인기척도 없는 그 집에 진짜 미국사람이 살기나 하는 건지도 몰랐지만 우리는 모두 미국집이라고 불렀고 그렇게 믿고 있었다.

아무튼, 놀랍게도 그 집에는 담장이 없었다.

동화책에나 나올 하얗고 나지막한 나무 울타리를 담장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그 융단 같던 잔디란…. 얼마나 멋진 사람들이면 저렇게 예쁜 집을 짓고 살까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굣길, 오랜만에 그 집을 향하던 나는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집에 담이 둘러싸여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지붕이 보이지 않을 만큼 높이.

어찌된 일일까?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일전에 친구들과 그 집에 돌을 던진 일이 떠올랐던 것이다.

도대체 그 집에 사람이 살기나 하는 건지, 정말 서양인형 같은 여자애가 있는지 친구들과 내기하느라 그랬던 일이 생각난 것이다.

겁이 났고 부끄러웠다.

한국 아이들을 얼마나 욕했을까 하고. 어린 마음에 마치 나라를 팔아먹었다는 이완용이 된 기분이었다.

그러나 3학년짜리 꼬마도 점점 자라나는 법. 이런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정말 그 집주인이 우리의 돌팔매에 담을 쌓았을까? 우연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나중엔 내 맘대로 더 확실한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어쨌든 아이들 돌팔매질에 놀라 담을 쌓은 사람이라면 애초에 예쁜 나무울타리를 치고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예쁨도 견디고 겪어내며 얻는 것이라고. 어느 날 어디서 똑 떼어 와 갖다 놓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고. 변명일까? 서정호(베이프로모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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