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조역 없는 사회'

일본은 남북의 길이가 3천km에 이르는 길다란 나라다.

국토의 최북단은 프랑스의 리옹, 최남단은 사우디아라비아와 거의 같은 위도에 위치한다.

나라가 긴 만큼 지역별 기질도 다양하다.

최북단의 北海道 주민들은 사람을 별로 가리지 않고, 정이 깊은 편이다.

조금 아래의 東北지방은 근면하고 과묵한 특성을 보인다.

자기편이 되면 든든하나 적이 되면 무서운 상대가 된다.

다음의 北 關東은 오기가 있고 성격이 급한 반면, 인정이 많은 두목 기질의 사람들이 많다.

중부지방은 확실하게 열매를 얻는 타입이고, 關西(近畿)지방은 너그러우면서도 계산에 밝다.

▲이런 다양한 기질은 일본의 내전이나 침략전쟁의 전략 자료로 활용돼 왔다.

말하자면 과단성, 용감성이 필요한 전투 일선에는 어느 지방 사람을 내보내고, 군수지원이나 점령지의 뒷마무리는 조직성과 안정성이 뛰어난 어느 지방 사람을 쓴다는 식이다.

전쟁의 역할을 기질에 맞게 배분하는 셈이다.

기질과 반대되는 용인(用人)을 하면 전투도, 군수지원도 엉망이 된다는 추론을 가능케 한다.

▲요즘 우리 사회는 정치자금 폭로전으로 단 하루의 영일이 없다.

국민들은 자고 나면 불거지는 몇 억, 몇 십억 소리로 귀가 멍멍해질 지경이다.

똥 묻은 개, 겨 묻은 개가 서로 잘 났다고 다투니 가관이다 못해 가소롭기까지 하다.

이런 먹자판의 와중에 선거까지 눈앞에 걸려 있으니 우수마발이 한 마디씩 오물을 토해낸다.

부패구조 청산을 위한 자기반성이나 새 정치질서를 만들어보자는 거시적 각성을 읽어 볼 수가 없다.

죽기살기로 똥밭을 뒹굴며 표를 달라는 아귀다툼만 벌이고 있다.

▲'부패정치 심판과 돈 선거 추방'을 표방한 289개 시민사회단체들이 2차례에 걸쳐 공천반대자 명단을 발표했다.

더러운 정치를 청산해보자는 충정에서 일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 소리마저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최고의 윤리성을 바탕으로 해야 할 시민사회단체들마저 정치에 오염된 듯한 양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탈정치의 순수성이 보장되지 않는 정치운동은 무익한 논의의 과잉을 일으킬 뿐이다.

국민들 눈에는 그들이 비판하는 정치권과 똑 같이 비쳐질 수도 있다.

▲시민단체들이 지금 주력해야 할 일은 낙천운동도, 낙선운동도 아니다.

자신의 기질에 맞는 역할분담 의식이 필요하다.

진흙탕 정치 일선의 전투병이 되겠다는 생각은 잠시 접어두는게 좋을 것 같다.

그런 더러운 일은 지금의 정치권에 맡겨도 충분하다.

자칫 병을 고치려 들다 자신이 병에 걸릴 위험성이 더 크다.

그 대신 부패구조 청산을 위한 대의와 방법론을 밝혀주는 '빛나는' 조역이 돼야 한다.

그것이 국민의 바람이 아닐까 싶다.

박진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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