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조선시대 여성의 삶

부부유별은 조선의 통치이념 가운데 하나였다.

우주 만물에 하늘과 땅이 있듯 인간에도 음양이 있다.

이에 따르면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으로 남자는 우주만물을 형성하는 근원이었다.

따라서 부부는 상호 보완적이되 그 일이 분리돼야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가르쳤다.

불평등한 남녀관계는 태어나서 자라는 동안 교육을 통해 내내 주입됐다.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상 위에 눕히고 옥을 주어 놀게 했다.

여자아이는 바닥에 눕히고 기와를 주어 놀게 했다.

분수에 맞게 키운다는 이유에서였다.

교육내용도 달랐다.

남자아이는 6세가 되면 숫자와 동서남북의 방위를 가르쳤다.

9세에는 삭망. 육갑 등 날짜를 헤아리는 법을 가르쳤다.

10세가 되면 밖의 스승에게 나아가 배우게 했다.

반면 여자아이는 10세가 되면 밖에 나다니지 않고 여자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방적과 양잠, 비단 짜는 법을 배웠다.

또 의복을 장만하고 제사 보살피는 법을 배웠다.

일상에서도 구분은 분명했다.

집을 안채와 사랑채로 분리했고 가운데 중문을 세웠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중문을 넘어가지 못했다.

따라서 남자는 안의 일을 말하지 않고 여자는 밖의 일을 말하지 않았다.

여자는 문밖 출입도 자유롭지 못했다.

외출할 때는 반드시 얼굴을 가렸다.

길을 걸을 때도 남자는 오른쪽 여자는 왼쪽으로 다녀야 했다

이 같은 내외법은 양반층의 이야기일 뿐이다.

서민의 경우 특별히 교육이랄 것이 없었고 내외법도 지켜지지 않았다.

남자들과 함께 논밭에 나가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반층과 서민층 여성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규율이 있었다.

'삼종지도'. 여성은 가정 속에서 남성의 보호 아래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들은 아버지를 따르고, 남편을 따르고, 아들을 따라야 했다.

여성의 사회적 성취가 막혀 있었다.

조선시대 여성의 결혼은 '위로는 조상을 받들고, 아래로는 후사를 잇기 위한 행위'였다.

결혼과 함께 여자는 남자의 집에 가서 살아야 했다.

따라서 여성에게 특히 많은 것이 요구됐다.

조선시대 부모들은 결혼하는 딸에게 시집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생활교육과 성교육을 했다.

생활교육은 주로 말과 행동거지 등 법도에 관한 것이었다.

걸음을 걸을 때는 발 크기보다 더 길게 떼지 않고, 어른 앞에서는 뒷걸음으로 물러 나와야 한다고 가르쳤다.

또 제례나 상례 때 곡을 어떻게 시작하고 그치는가,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눈물이 나오는가를 가르쳤다.

성교육은 아들을 낳기 위한 것이었다.

남편의 양기를 해치는 음식을 삼갈 것과 아들을 낳을 확률이 높은 날을 계산하는 법을 가르쳤다

이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모두 달라 신부수업 중에 가장 어려운 수업이었다.

그러나 여성은 가정을 운영하는 중심이었다.

가정 일은 남편이 간섭할 수 없었고 가정에서 부인의 지위는 절대적이었다.

여성은 어머니로서 권리도 가지고 있었다.

남편과 시아버지가 죽은 뒤에는 집안의 최고 어른으로 입양을 결정하고 혼인.상속 등을 주도했다.

재산권도 있었다.

조선 전기에는 제사를 지낼 맏아들을 외에 여러 아들과 딸이 재산을 골고루 나누어 가졌다.

결혼한 딸도 똑같은 자격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여성의 재산상속에 대한 권리는 작아졌다.

제사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맏아들이 중요해졌고 상속재산은 맏아들에게 집중됐다.

특히 '출가외인'이라는 관념이 확실해지면서 시집간 딸은 상속에서 배제됐다.

조선 후기에는 유교윤리가 전사회적으로 확산됐다.

남존여비와 출가외인 사상은 더욱 굳건해졌고 여성의 지위는 갈수록 낮아졌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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