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지하철 참사 1주년을 되돌아보며

대구 지하철 참사가 발생한 지 꼭 1년이 되었다.

192명이 죽고 146명이 아직도 고통을 앓고 있는 이 사건은 참으로 어처구니없고 가슴 아픈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런 사건이 언제 일어났는지조차 잊어버릴 만큼 아무렇지 않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인간은 단순히 과거를 망각하거나 답습하는 무반성적 존재가 아니라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상상하면서 현재를 지각해가는 역사적 존재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된 역사적 존재로서 자리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현재를 어렵게 만드는 과거의 요소를 철저하게 반성하고 그것을 미래 속에 발전적으로 자리 매김 시켜야 할 것이다.

바로 이와 같은 면에서 볼 때 아직도 우리 대구 시민은 역사적 존재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참사의 아픔을 기억해야 할 주체는 참사를 당한 관련 가족들만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모두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미 고통의 몫은 일부에게 맡겨져 있다.

어디 이 뿐인가? 지하철 참사가 있고 난 1주일 뒤인 지난 해 2월 25일 대통령이 이 대구를 방문하여 국가재난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선한다고 약속하였지만 예산의 부족으로 진척이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으며, 대구시 역시 지하철 안전시설 및 시스템을 마련하겠다고 하였지만 여전히 개선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몇 사람을 처벌한다고 아픈 과거가 치유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지금도 우리의 몸을 싣고 달리는 지하철은 우리의 목숨을 언제라도 앗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있다.

익히 알다시피 지금 우리나라에는 하루 지하철 이용자가 650만 명에 이른다.

대한민국 인구의 7분의 1정도가 매일 이 지하철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꾸려가고 있다.

이처럼 지하철은 한국인의 삶을 지배하는 동맥이다.

이 지하철이 동맥경화증에 걸리는 날 우리는 모두 파멸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현대 사회는 시간의 고속화와 공간의 고밀도화를 통하여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시대이다.

그러다보니 대형교통수단과 대형건물이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며, 이로 인하여 사람들이 특정 시간과 공간에 집중된다.

그러므로 사고의 발생은 엄청난 생명을 앗아가는 사건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당연히 시간의 고속화와 공간의 고밀도화가 심화되면 될 수록 안전시스템도 그만큼 비례해서 발전되어야 하며, 아울러 시민들의 안전의식도 더 강화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 사회에는 적당주의, 편리주의, 안일주의, 속도주의가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이런 잔재는 박정희 이후 전개된 압축근대화의 산물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서둘러 근대화를 이루려고 하다보면 절차의 합리성, 엄격성, 상호성, 정당성이 제대로 검토되지 않기 마련이다.

성장경제 아래서 이윤을 극대화하려고 하다보면 거래의 공정성이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약화되기 마련이다.

지금 우리들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대형사고들 모두는 이런 양상으로부터 결코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그러므로 지난해 대구에서 발생한 지하철 참사는 단순히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회적 사건으로 단정될 수 없으며, 간단히 잊혀져도 되는 사건이 아니다.

대구 지하철 사건은 압축근대화를 거친 21세기 한국사회의 모순이 그대로 노정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어쩌면 대구는 이런 모순의 중앙에 서있는 도시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한국사회가 새롭게 깨어나야 하듯이 우리 대구도 과감한 혁신을 통하여 이런 수치스러운 사고도시로부터 벗어나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구 사회 저변에 흐르고 있는 비합리적 구조들을 철저하게 개혁해내는 행정시스템과 이를 빈틈없이 감시하고 견제하는 시민운동이 더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공론장이 살아 움직임으로써 이윤이나 편리보다는 사회적 책임과 복지가 중시되는 사회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 대구시민은 지하철 사건 1주기를 맞이하여 역사적 존재로 거듭 태어나 대구가 이 땅에서 가장 안전시스템이 잘 마련되어 있는 생명의 도시가 되는데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권리만 주장하는 주체의 시대가 아니라 책임을 진지하게 질 수 있는 타자의 시대를 열어가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할 때에만 저승다리를 건너가지 못하고 구천을 헤매는 원령(怨靈)들이 한을 내려놓고 떠나갈 것이다.

김석수(경북대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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