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상처받은 마음도 수리하고 싶어요"

봄 기운이 조금씩 스며든 지난 16일 오전11시 서구 비산동 옛 오스카극장 뒷골목. 고층빌딩에 둘러싸여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단층 목조건물 10여 채가 옹기종기 숨어있는 이 골목이 갑자기 '뚝딱'거리는 망치질소리로 소란스러워졌다.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무료 집수리 봉사를 펼치고 있는 달구벌 자원 봉사단원 10여명이 이곳에 들렀기 때문. 이날 이들이 집수리에 나선 곳은 월세 5만원의 3평 남짓한 단칸방에 살던 경옥순(76)할머니 집이었다.

봉사단장 안천웅(44)씨는 "할머니가 거동이 불편한 생활보호 대상자이고 고등학교에 다니는 손녀와 함께 단둘이 사는 등 어려운 처지로 고통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집수리 봉사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집수리를 시작한 회원들은 채 30분도 되지 않아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맺혔다.

나무 출입문은 페인트칠이 벗겨져 색이 바래져 있었고 언제 청소를 했는지 방에는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는 등 고쳐야 할 곳이 한두 곳이 아니었다.

자원봉사에 나선 조애경(41.서구 비산동)씨는 "열악한 환경에도 놀랐지만 내가 사는 바로 이웃에 이런 집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았다는 게 더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오전부터 시작된 집수리는 짙은 어둠이 깔리고서야 끝이 났다.

새 집으로 변한 집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할머니는 "대궐이 부럽지 않다"며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이날 회원들은 화장실 문 달기와 도배 및 청소는 물론 베지밀 1박스 등 선물을 할머니 가족에게 전달했다.

자원봉사를 위해 도배기술까지 익혔다는 임재경(49.서구 비산동)씨는 "단순히 집을 고쳐준 것이 아니라 할머니에게 행복을 심어 준 것 같아 가슴이 벅찼다"며 뿌듯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달구벌 봉사단은 지난 2002년12월 소외된 이웃들을 도와주기 위해 만들어진 순수 민간봉사단. 창단초기에는 무료급식이나 생일상 차리기 등 재가노인과 장애인을 돌보는 봉사활동을 펴다 노인들이나 장애인들이 살고 있는 집이 너무 낡은 것을 보고 지난해 초부터 집수리에 나서게 된 것. 봉사대상은 재가노인과 장애인, 소년소녀가장, 모자가정, 기타 불우가구이며 기초생활 대상자는 우선 수리해준다.

수리에 필요한 자재비 등 각종 경비는 전액 회원들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매달 1만원씩 각자 주머니를 털어 한달 평균 5가구쯤 가옥수리를 하지만 200만~300만원씩 드는 수리비용을 대기에 턱없이 모자라 재정난을 겪으면서 위기를 맞은 지난 연말에는 몇몇 회원들이 1천만원이란 거금을 내놓기도 했다.

봉사단에는 처음에 단장인 안씨를 비롯, 10여명이 참여했다.

각자 직업이 다른 탓에 초기엔 한달에 한번씩 모여 가옥수리 봉사활동을 폈지만 소문이 나면서 집을 고쳐 달라는 요구가 쇄도해 봉사횟수를 늘렸고 회원수도 139명의 대식구로 늘어났다.

회원들이 늘어나면서 목수와 건축, 설비, 미장, 타일, 새시, 용접, 굴착기 운전기사 등 여러 직업의 사람들이 참여해 봉사내용도 페인트 칠하기에서부터 보일러수리와 교체, 부엌수리. 지붕수리, 출입문, 현관, 새시설치 등 다양해졌다.

지금까지 이들이 수리한 집은 모두 200채가 넘는다.

운영하던 신발공장이 부도가 난 지난 1997년부터 이웃을 위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는 안 단장은 "고된 봉사활동이지만 말끔해진 집을 보면서 고마운 나머지 눈물을 흘리는 노인들을 보면 가뭄끝의 단비같은 보람을 느낀다"며 "집 수리만 아니라 어렵고 힘든 이들의 지치고 상처받은 마음까지 수리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집수리 뿐만 아니라 저소득층과 홀몸노인들을 위한 무료이발.결식아동을 위한 무료급식 활동도 함께 펼치는 달구벌 자원봉사단은 앞으로 장애인들을 상대로 무료 목욕사업을 펼치는 등 봉사영역을 더욱 넓혀 나갈 예정이다.

최창희기자 cch@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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