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음식은 먹는 사람에게 기쁨을 준다.
그러나 그 기쁨은 그저 음식이 주는 맛으로 말미암은 것만은 아니다.
언제, 어느 때, 누구와, 어떤 기분으로 음식을 먹고 향유했는가 하는 것으로 그 음식은 추억이 되고, 기쁨이 되는 것이다.
음식에 얽힌 사회 명사들의 추억을 담은 산문집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한길사 펴냄)이 최근 출간됐다.
지난 해 세상을 떠난 아동문학가 이오덕을 비롯해 소설가 박완서 최일남 성석제 신경숙 공선옥, 시인 김갑수, 화가 정은미, 만화가 홍승우, 시사만화가 고경일, 방송프로듀서 출신인 주철환 이대 교수, 장용규 외대 교수, 건축가 김진애씨 등 13명이 따뜻하고 유쾌하며 가슴뭉클한 음식에 관한 추억을 얘기하고 있다.
책의 제목은 이오덕 글에서 따왔다.
그가 일제시대 영덕 군청에서 일할 때였다.
출장을 다니는 길에 밥을 먹지 못해 쓰러질 지경에 이르렀던 그는 군청 동료들을 만나 어느 주막인지 농가인지 찾아가 푸성귀에 된장 반찬으로 밥을 맛있게 먹었다.
그는 그날 주인에게 밥값을 주지 못했고, 그 뒤에 다시 찾아가 인사도 못하고 살아온 것을 죄스러워 했다.
그러면서 죽는날까지 당시 자신을 구해준 밥 한 그릇과 그 밥맛을 잊지 못한다고 글에 남겼다.
또 평생을 아이들과 함께 한 그의 '감자예찬론'은 아릿한 느낌을 준다.
"내가 믿는 하느님도 감자를 좋아하실 것이다.
맑고 깨끗하고 따스하고 부드러운 감자맛을 가장 좋아하실 우리 하느님, 내가 죽으면 그 하느님 곁에 가서 하느님과 같이 뜨끈뜨끈한 감자를 먹을 것이다".
박완서씨가 기억하는 생애 최고의 음식은 메밀칼싹두기와 참게장. 박씨는 "메밀칼싹두기는 밀가루로 하는 칼국수보다 면발이 넓고 두툼하고 짧아서 국수보다는 수제비에 가까웠다"며 "(그 맛은) 따뜻하고 부드럽고 무던하고 구수한 메밀의 순수 그 자체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할아버지가 젓가락끝으로 파내 밥숟가락에 얹어줬던 참게장의 맛에 대해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혀 전체가 반응하고 입안의 점막까지도 그 맛을 한 번만 보면 생전 잊지 못한다"고 적었다
신경숙씨는 서울생활 첫 해에 시골 어머니가 커다란 양은주전자에 가득 담아왔던 자줏빛 팥죽의 맛을 잊지 못한다.
성석제씨는 충북 충주로 가는 38번 국도의 식당에서 파는 '묵밥'의 맛을 소개했고, 주철환씨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시장통 고모집에서 살 때의 가난했던 시절을 바나나에 대한 추억을 통해 이야기한다.
공선옥씨는 아홉살 때 쌀이 떨어진 빈 독에서 얼굴로 확 끼쳐왔던 서늘한 기운을 기억해 낸다
"아버지는 청국장을 드시지 않는다.
사업에 실패하고 여관을 전전할 때 한동안 드셨던 음식이 청국장이다.
음식은 기억이다".
이대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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