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네이터'는 시간여행의 역설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미래의 존 코너가 과거의 어머니 사라 코너를 살해했다고 가정하자. 그를 낳기 전 사라가 살해되면 존은 절대로 세상에 존재할 수가 없다.
그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누가 사라를 죽였단 말인가. 그리고 존 코너의 어머니를 죽인 것은 존 코너라고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는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사라가 살해되면 존은 연기처럼 사라져 버릴까?
결론적으로 말해 존 코너는 어머니를 죽이지 못한다.
다시 말해 존 코너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어머니를 죽이려는 그의 모든 시도가 실패해야 한다는 뜻이다
'터미네이터'는 이 같은 '모친 살해의 패러독스'를 SF에 결합시킨 작품이다.
미래의 터미네이터는 가공할 위력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사라를 죽이지 못한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흐른다'는 인과율의 법칙을 가지고 과거와 미래를 교묘하게 연결시켰다.
영화 속에서처럼 존 코너가 세상에 태어날 수가 있을까.
카일은 사라 코너의 사진을 보고 반한다.
사라 코너가 죽고 난 후다.
그래서 사라를 보호하는 임무에 자원한다.
아들보다 늦게 태어나 그의 부하가 돼 다시 과거로 돌아가 그의 아버지가 된다는 설정이다.
시간여행의 핵심은 빛이다
100미터를 정확히 10초에 완주하는 달리기 선수가 있다고 가정하자. 매우 정확한 스톱워치를 손목에 차고 달린다면 그의 시계는 9.999999999999995초를 가리킬 것이다.
1000조분의 5초 차이. 빛의 속도에 더욱 가깝게 움직일수록 시간은 점점 느려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시계가 빛의 속도로 움직인다면 시간이 완전히 정지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나오기 전 사람들은 '시간'은 거스를 수 없는 절대개념으로 여겼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에 의해 빛의 속도에 가깝게 운동을 하는 경우 관찰자에 따라 다르게 흐르는 '상대적인 시간'이란 개념을 받아들이게 됐다.
시간여행의 개념을 SF에 버무렸지만 '터미네이터'가 궁극적으로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운명론이다.
시간여행을 통해 과거의 역사에 개입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다.
과거의 사라 코너를 죽임으로 전혀 다른 '기계들의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2편에서는 '심판의 날'을 정지시키는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사라 코너는 '운명은 없다'(No Fate)며 지구 종말의 단서가 되는 '스카이 넷'을 파괴한다.
그러나 3편에서는 또 다른 '스카이 넷'이 존재를 통해 결국 지구의 핵전쟁은 피할 수 없는 운명임을 보여준다.
사라 코너를 죽이려는 터미네이터의 시도도 실패하고, 인류 종말의 시간을 중지시키려는 사라 코너의 노력도 무산되는 것이다.
이미 정해진 운명은 시간여행을 통해서도 바뀔 수가 없다는 점을 역설한다.
시간여행 개념은 운명론적인 미래관을 부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종의 열린 세계관이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 시간 여행자에게 역사를 바꿀만한 자유 의지가 없다.
과거는 이미 발생했고, 우리에게는 한 가지 해석만이 허용된다.
선택 가능한 대안이 없는 '무선택 역설'(no choice paradox)이다.
'터미네이터'는 시간과 관련된 갖가지 패러독스를 소재로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 하지만 물리학적 한계까지 제시해 준다는 점에서 완성도 높은 SF영화로 평가받고 있다.
김중기기자 filmtong@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