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봄기운 넘실대는 완도

국토의 남단, 남녘의 섬에는 뭍보다 먼저 봄빛이 돈다. 완도에는 봄날의 양지처럼 따사로운 들판과 바다가 있다. 겨우내 파도의 깃을 세웠던 매서운 바람이 훈풍으로 변해 코끝을 간질이는 요즘, 섬은 정말로 섬답다.

행락객들의 발길이 뚝 끊긴 섬에는 파도처럼 밀려오는 물새소리와 해벽을 타고 올라오는 아지랑이처럼 아득한 봄기운이 넘실댄다. 완도로 달린다. 꽤나 먼 거리. 봄마중을 가는 길은 비록 거리가 멀어도 가는 길목마다 봄의 전령들을 만날 수 있기에 그리 지루하지 않다.

203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완도는 신지도, 고금도, 금일도, 보길도, 노화도, 소안도, 당사도, 청산도 등 60여개의 유인도와 140여개의 무인도를 아우르고 있다. 일주도로 곳곳에 동백꽃이 만개했고 햇살에 반사된 동백나무잎이 마치 기름을 발라 놓은 듯 반짝인다.

완도대교를 건넌다. 대교라기에는 우스울 정도로 작은 1백여미터의 다리다. 다리를 건너면 두갈래 해안일주도로가 나온다. 우측길 서부해안도로로 들어선다. 우측으로 청정바다의 푸르름이 끝없이 펼쳐지고 썰물로 빠진 뻘에 봄 햇살이 반사돼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완도에는 지금 겨울과 봄이 함께 있다. 썰물로 바닷물이 빠진 뻘이 봄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이 아름다운데 그 앞에는 이미 한뼘 이상 자란 마늘밭이 녹색의 향연을 펼치고 있고 그 경계에는 지난 가을 자태를 뽐내던 갈대가 아직도 갈꽃을 이고 있다.

푸른 마늘밭과 갈색 갈대, 그너머에는 생명을 잉태한 뻘밭 그리고 이어지는 은빛바다와 아득한 다도해에 떠 있는 섬들... 그 절묘한 색의 배합을 어느 화가가 제대로 그려낼까?

계속해서 달리면 바다 건너로 해남의 달마산 뒷자락이 보이다가 어느듯 땅끝등대도 보인다. 곳곳에서 만나는 평화로운 어촌의 전경과 키낮은 돌담, 그리고 방풍림들. 삭막한 도시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도시인들은 그저 이렇게 섬도로를 드라이브 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확 뚫리는 것 같다.

◇완도 국립수목원(061-552-1544)

서부도로를 달리면 제일먼저 눈에 들어오는 이정표가 '완도국립수목원'. 대구에 수목원이 있지만 여기는 국내 유일의 난대 수목원으로 국립이다. 동백, 붉가시, 후박나무 등 천연상록수림이 30여개의 전문 수목원으로 조성돼 있고, 금새우난 등 난대성 희귀식물 700여종도 자생한다.

수목원에 들어서면 우측으로는 넓은 호수가 있고 앞에는 높지는 않지만 아주 예쁜 상황봉이 있다. 호수를 가로지르는 나무다리를 건너면, 왼족으로 갖가지 나무들이 저마다 이름표를 달고 있다. 전시관에는 수목원에 있는 식물을 오목조목 모아 설명을 해 놓았다. 전시관 뒤 약간의 오르막을 오르면 식물원이 나타난다. 제주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아열대식물들이 전시돼 있다.

식물원을 벗어나 조금 더 오르면 전망대가 나타나고 그 길로 계속 오르면 완도의 진산인 상황봉의 꼭대기까지 오를 수 있다.

◇TV드라마 '허준' 유배지 촬영세트

수목원을 나와 조금 더 달리면 TV드라마 '허준' 촬영세트장이 나온다. 마을입구에 조그만 주차장을 만들어 놓았는데 동네주민들이 '마을주민외 외지차량은 동네에 진입금지'라는 경고문을 붙여 놓았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바람에 마을주민들이 많은 불편을 겪었나보다.

마을길을 들어서니 차량교행이 불가능한 골목길이다. 주민들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바닷가에 세워진 세트장은 자연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지만 역시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을씨년 스러운 법. 세트장앞에 있는 간이 '허준 가게'가 세트장을 지키고 있다.

삶은 뻔데기를 천원어치 사들고 돌아오는 길내내 먹는데, 어린시절 향수를 자아내는 맛이 괜찮다.

◇정도리 구계등

화흥포항을 지나면 정도리 구계리 해안에 닿는다. 완도 최고 명물이다. 주차장에 들어서자 국립공원 정도리 관리사무소가 있다. 국립공원 입장료를 내야 한다. 관리사무소 왼편으로 난 길을 따라 해안을 내려선다.

구계등이란 아홉개의 계단을 뜻한다. 자갈로 이루어진 해변이 계단을 이루어 바다속까지 이어져 있단다. 눈에 보이는 것은 비록 서너개의 계단이지만 물속으로 나머지 계단이 이어져 있다. 그 계단이 급경사를 이루므로 잘못 바다에 들어가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따라서 이곳은 해수욕을 금한다.

자갈이라고 하기에는 무색할 정도로 큰 자갈이다. 좌우 30cm정도의 자갈부터 시작해서 엄지손가락 손톱 크기의 자갈까지 여러가지 크기의 자갈이 약 2km에 걸쳐 깔려있다. '호박같이 둥근세상 둥글둥글 삽시다'란 학창시절 불렀던 노래가 생각난다.

서로에게 둥글어서 아무렇게나 뒹굴어도 아프지 않는 것들이 함께 모여 한세상을 만들어 가는 세상이 이 구계리 몽돌해변에 있다. 둥근 몽돌이 처음부터 둥글었을까? 처음에는 칼날같은 바위여서 다른 바위와 부딪여 수많은 상처를 내고, 자신은 부숴지는 모난 기억을 가지고 있으리라. 오랜 절망을 견딘 자만이 둥글고 단단한 희망 하나를 품을 수 있으리....

해안가 위에는 해안경비 초소가 '몽돌 반출 감시초소'를 겸하고 있다. 자갈밭 윗쪽으로 천연기념물인 상록수림이 있다. 참나무와 떡갈나무 등 상록수와 단풍림이 우거진 방품림이다. 숲속오솔길을 따라 삼림욕도 즐길 수 있다. 무성한 수풀이 좌, 우 그리고 머리를 덮고 있다.

상당히 구불구불한 길이므로 바로 뒤에 따라오는 팀들이 보이지 않을 경우도 있다. 윤대녕의 단편소설 '천지간'의 그 무대가 바로 완도 정대리 구계등이다.

◇가는길 : 구마고속도로→남해고속도로→순천→서광주IC→나주(13번국도)→영암→해남→완도(5시간 가량소요)

사진·글 : 정우용기자 sajah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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