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이쑤시개 소송과 탄핵

노무현 대통령은 변호사 출신이다.

법 공부로 출세(?)한 율사(律士) 정치인인 셈이다.

그런만큼 그는 보통사람들 보다 법을 많이, 그리고 더 잘 알고 있다고 봐야 한다.

고시공부 시절 법철학도 탐구 했을 것이고 정의와 법, 법률과 양심의 문제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법률가로서의 뚜렷한 철학이 서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유리한 송사(訟事) 보다는 불리한 화해가 더 낫다'는 법언이나 '너를 고소하는 자가 있거든 그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길에 소송에 이길 궁리보다 화해하는데 더 힘써라'고 한 성서(루가복음)의 가르침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흔히 법을 가까이서 다루는 사람들은 자칫 모든 사리를 법의 논리로 풀려고드는 자기굴레속에 빠지기 쉽다.

법적으로는 정의가 될지 모르나 보편적 상식과 평범한 양식에 비춰볼때 정의가 아닌 일도 법률가들은 법의 논리를 내세워 정의로 고집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화해보다는 하찮은 시비로 서로 큰 이득도 없는 소모전을 벌이는 짓을 마다않게 된다.

예를들어 이런 일화가 그런 경우다.

1907년 프랑스의 지르벨이란 변호사는 파리의 리옹 역(驛) 하물(荷物)예치소에 이쑤시개 한개를 달랑 내밀면서 자기가 찾으러 올때까지 보관해 두라고 맡겼다.

그러자 예치소 직원은 '사람을 놀려도 분수가 있지'라며 분연히 거절했다

그러자 지르벨 변호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쑤시개도 수하물 예치 목적물이 될 수 있다며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내고 사무원을 법률위반으로 고소했다.

그 소송은 그뒤 20년이나 계속됐다.

간이재판소에서 지방재판소, 고등재판소, 최고재판소까지 거쳐올라간 이쑤시개 소송은 결국 법대로 국가가 패소했고 무려 4만달러의 소송비용을 정부가 물어야 했다.

과연 그 소송으로 프랑스와 프랑스 국민이 얻은 소득은 무엇이었을까.

하찮은 이쑤시개도 고객의 예탁물을 보관해줘야 한다는 공복의 봉사정신을 강조해 낸 것이 소득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법률적인 정의로는 그런 논리가 틀리지 않을 지 모른다.

그러나 법철학에서 말하는 법의 정의나 법률적 언어로 표현되지 않은 부분까지 포함하여 맡은 사람에게 당연히 자명한 것으로 인식되어지는 양심의 소리, 즉 보편적 정의로(불문율)로 볼때는 한낱 변호사의 소송기술의 승리취득에 지나지 않는다는 논리도 있을 수 있다.

과연 4만달러를 써가며 20년을 매달릴 만한 가치있는 소송이었다는 자부심이 프랑스 국민의 가슴 속에 남아 있을까. 노 대통령의 열린 우리당 지지 발언에 대해 내려진 선관위의 선거법 위반 결정을 두고 야당의 대통령 탄핵 시비가 법률적 다툼으로 번지는 걸 보면서 100년전 프랑스의 이쑤시개 소송을 생각해 봤다.

야당은 노 대통령이 법을 위반했으니 실정법도 안지키는 변호사 출신 대통령은 마땅히 탄핵대상이라는 논리로 맞서고 청와대측은 '대통령이 어겼다는 현행선거법 자체가 잘못된 법'이라며 "납득 못하겠다"는 논리로 맞서는 바람에 송사가 일어나고 있다.

어느쪽 논리가 더 옳은지 또 과연 오늘 대한민국이 꼭 치러야할 법률적 다툼꺼리가 되는 것인지 가리기 전에 변호사 출신 대통령이라면 알만한 법률분야의 금언(金言) 몇가지를 예로들어 판단해보자. 미국의 R. 러셀은 자신이 미남부출신자 들을 결속시켜 집단 반대했던 민권법이 그대로 통과 돼버리자 그래도 반대파가 통과시킨 법을 준수해야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어느 특정 법률에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을 준수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것은 무정부주의의 태도다.

개인이 문제의 법률을 지지하건 지지하지 않건 우리의 정부는 법에 의거한 정부이며 따라서 법의 준수가 개인의 찬성.반대에 달려있는 사실을 배격한다'.

존슨 미대통령도 '민주주의에서 권력이나 힘으로 또는 고의적으로 법률을 침해 하는 것 이상으로 더 큰 행패는 없다'고 경고했다

탄핵추진이 옳고 그르고는 법률가의 머리보다는 국민의 가슴으로 판단할 문제지만 이미 일부 인터넷 신문의 네티즌 여론투표에서는 오늘 아침 현재까지 두군데 이상 모두 65% 이상이 야당의 '탄핵조치가 적절하다'며 노 대통령 탄핵추진을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65% 네티즌들이 탄핵추진을 적절하다고 지지하는 이유에는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불안한 지도자라면 하루라도 더 일찍 물러나는게 국익에 더 도움이 된다는 논리도 들어 있다.

반대하는 네티즌들의 생각에는 탄핵 자격도 없는 부패한 일부 야당이나 국회가 누구를 탄핵하느냐는 주장과 정략에 의해 나라의 혼란만 더 부추긴다는 논리가 들어있다.

야당뜻대로 탄핵이 법률적 요건을 맞춰낼지 엄포로 끝날지는 아직 예견 할수 없지만 이쑤시개 소송처럼 하릴없는 시비와 공허한 법리(法理)다툼으로 아옹대는 것이 과연 할일이 태산같은 이나라와 4천만 국민에게 무슨 영광과 실익을 남겨줄 것인지 양쪽 모두 곰곰이 생각해 봐야한다.

먼저 노 대통령부터 자신이 쓴 저서 '노무현이 만난 링컨'(89페이지)에서 링컨이 어떤 말을 했는지 기억해 보시라.

'모든 미국인, 자유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 그리고 자손이 복 받기를 바라는 사람은 혁명에 바쳐진 피를 걸고 맹세합시다.

법률의 일점, 일획도 어기지 않겠다고, 다른 사람이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을 방관하지 않겠다고 … 한마디로 말해서 이것(법률준수)이 이 나라의 정치적인 종교가 되게 합시다'. 링컨을 진정 존경한다면 먼저 법률의 한획까지도 지키겠다는 링컨의 준법정신부터 본받아야 한다.

대통령쪽에서 현행법이 잘못이라느니 납득이 안간다느니 하는 식으로 자질구레한 법리싸움에 연연하면 야당 역시 아둔한 송사의 미련함에서 헤어날 수 없다.

이제 당신께서는 국민적 화해로 나라를 이끌어야할 대통령이지 이쑤시개 송사같은 작은 법률 시비나 가려내는 변호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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