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섬진강 매화마을

천지간에 꽃입니다 / 눈 가고 마음 가고 / 발길 닿는 곳마다 꽃입니다 / 생각지도 않는 곳에서 / 지금 꽃피고, 못견디겠어요 / 눈을 감습니다 / 아, 눈감은 데까지 따라오며 / 꽃은 핍니다...(섬진강시인 김용택 '이 꽃잎들' 중)

춘삼월. 봄을 앞세운 달이다. 음력으로 윤2월이 시작되는 이달 하순쯤이면 반도는 봄꽃 열병에 휩싸인다. 봄을 시샘하는 100년만의 폭설과 꽃샘추위도 이미 불붙기 시작한 꽃바람을 막지는 못했다. 남도의 젖줄 섬진강. 그 아름다운 강줄기 주위 산천은 이미 매화꽃이 점령해 산과 강변을 불태우고 있다. 분홍색, 연두색, 흰색... 멀리서 보면 그저 희끗희끗 황사가 왔나 싶지만 천리를 간다는 매화향이 강바람에 묻어오면 틀림없는 꽃들의 반란이라는 확신이 든다.

섬진강의 봄은 찬란하다. 매화가 피는 지금부터 산수유, 벚꽃이 앞다투어 자리를 바꾸며 강둑을 교란시키고 과수원에 심어놓은 배꽃이 그 뒤를 잇는다. 섬진강은 지리산을 몸으로 안고 부비며 오백리 물길을 돌고 돌아 남해에 도착한다. 유흥준교수가 "한반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묘사한 하동에서 시작하는 19번 국도는 양옆으로 섬진강 바람을 받은 꽃나무들이 화려한 봄의 부활을 노래하고 있다.

하동에서 국도를 따라 구례쪽으로 오르다 섬진교를 건너 우측으로 방향을 잡으면 861번 지방도를 만난다. 19번 국도에서 더러는 꽃망울로, 더러는 흐드러진 모습을 보이던 매화는 지방도로 접어들면서 만개한 놈들이 훨씬 더 많다. 아직 절정은 아니지만 왼편에 위치한 백운산 자락은 온 산에 핀 매화꽃으로 마치 하얀 꽃구름이 산자락에 내려앉은듯 하다.

섬진마을이란 이름이 더 정겹지만 매화로 워낙 유명해져 아예 매화마을로 불리는 이곳은 지방도 중간에 있다. 달리다 보면 문득 왼편이 환해지는 곳이다. 지난 30년대부터 산과 밭에 곡식대신 매화나무를 심은 이곳은 맑고 온화한 강바람과 알맞게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천혜의 매실농사를 할 수 있는 곳이다.

매화마을의 절정은 청매실농원(061-772-4066). 동네에서부터 500m가량 언덕길을 따라 올라간다. 온통 매화나무다. 사무실앞에 있는 2천여개의 장독대가 굽이도는 섬진강을 배경으로 그림같이 놓여있고 그 속에서 매실장아찌, 매실고추장, 매실된장 등이 무르익어 가고 있다.

농장에 난 산책로를 따라 매화천지인 세상에 들어선다. 오전 햇살에 역광으로 비치는 매화꽃. 흰꽃은 역광으로 볼 때 감동이 더한다.

70년된 시커먼 고목에 핀 순백의 매화꽃은 70년대 흑백영화를 보는 감흥에 젖게 한다. 뒷산에는 얼마전 내린 폭설이 아직 녹지 않아 남아 있고, 농원에는 매화나무마다 새하얀 꽃잎으로 뒤덮여 있다. 산책로 중간에는 키가 수십미터나 되는 대밭이 들어서 있다. 영화 '취화선'을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댓잎에 스친 섬진강 바람이 장독대 매실을 잘 숙성시키는가 보다. 매화밭에는 주인 홍쌍리씨가 보리를 심어놓았다.

매화나무가 온통 흰색으로 뒤덮힐 쯤이면 땅에서는 초록의 보리가 올라온다. 순백의 매화꽃과 초록의 강렬한 색채대비는 그 속에 있는 사람을 그림의 한 소품이 되게 한다. 드라마 '다모' 촬영지인 전망대에 이르면 섬진강의 굽이가 한눈에 들어오고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나오는 길에는 동네 할머니들이 봄나물을 캐 반짝 시장을 열고 관광객들과 흥정을 하고 있다. 강건너 화개장터 만큼이나 싱싱하고 다양한 봄나물을 만날 수 있다.

12일부터 21일까지 열리는 제8회 매화축제를 앞두고 벌써부터 매실농장에는 수십동의 천막이 세워져 있고 주차장마다 차들이 만원이다. 주차안내부터 각종 매실제품 시음회와 판매를 위한 인력이 40여명이 배치되어 있다.

◇가는길 : 구마고속도로→남해고속도로 하동IC→하동19번국도→섬진교 건너 좌회전→861번 지방도→섬진마을(2시간 반가량 소요)

◇하동에서 시작하는 19번 국도와 건너편 861번 지방도는 드라이브 명소로 소문난 곳. 19번국도를 따라 40여분정도 올라가면 지리산 온천랜드가 나오고 온천랜드 위 상위마을에는 조금 있으면 산수유가 지천으로 피어난다.

◇하동의 먹을거리는 재첩. 국도변을 따라 많은 재첩식당이 있다. 재첩회와 재첩국이 외지인들에게는 별미. 재첩회 2~3만원, 재첩국 5천원.

사진·글:정우용기자 sajahoo@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