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대구 국채보상기념공원. 날씨가 많이 풀렸는데도 두툼한 털목도리(?)를 하고 나온 젊은이들이 보였다.
그런데 이게 웬걸? 가만히 들여다 보니 털목도리가 아니라 살아있는 짐승이었다.
"이게 뭐꼬?"
생전 처음 보는 짐승을 목에 감고 있으니 보는 이들마다 신기해 할 수밖에….
페릿 등 별난 애완동물을 키우는 이들이 적잖다.
식용 달팽이를 애완용으로 기르는가 하면 '치킨'으로만 생각되는 닭을 애완견처럼 애지중지 키우는 경우도 있다.
이색 애완동물을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있는 사람들을 만나봤다.
*페릿
"여름아, 어디 있니?"
최혜정(23.대구시 북구 검단동)씨는 집에 들어갈 때마다 숨바꼭질을 하는 기분이다.
'여름'이라고 이름붙여준 애완동물 페릿이 어디에 숨어있는지 집안 구석구석을 뒤져야 하기 때문이다.
"페릿은 구석진 곳을 좋아하고 잠꾸러기예요. 지난번에는 아무리 찾아도 없기에 텔레비전 뒤를 보니 뻗어 자고 있더라구요".
개, 고양이를 키워본 최씨는 족제비과 동물인 페릿이 특이해서 좋다고 했다.
페릿은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열린 애완동물 콘테스트에서 1등을 할 정도로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인기를 끌고 있지만 아직은 모르는 이들이 더 많다.
그래서 페릿을 데리고 나가면 많은 이들의 시선을 받게 된다고. 10명 중 7, 8명은 궁금증을 참지 못 하고 "그게 뭐예요?"하며 묻기 일쑤다.
"페릿은 애교가 많고 장난치는 걸 좋아해요. 호기심도 많아 비닐봉지의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안에 들어가봐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에요".
2년전 우연히 TV에 나온 페릿을 보고 키우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는 그녀는 페릿이 개처럼 시끄럽게 짖지 않고 소리를 잘 안 내는 편이어서 집에서 키우기가 좋다고 했다.
말을 듣지 않으면 손가락으로 콧잔등을 살짝 때리면서 야단을 치면 잘못한 줄 알아듣는다고 했다.
"키울수록 정이 드는 것 같아요. 집에 가면 반겨주는 페릿이 있어 혼자 있어도 심심하지 않잖아요".
페릿이 어릴 때는 손가락을 물려 피를 많이 보기도 했다는 그녀는 '인터쥬 페릿 대구.경북 동호회' 회원들과 정기 모임으로 즐거운 만남의 시간도 가지고 있다.
*토종닭
"자, 삐미∼, 까까 먹어".
대구시 북구 산격2동에서 꽃집을 운영하고 있는 최봉순(42)씨 집에는 영특한(?) 닭이 한 마리 있다.
올해로 세살난 토종닭 '삐미'다.
'삐미'라는 이름은 '삐약삐약'의 '삐'와 아름다울 미(美)자를 한자씩 따 이름지었다고.
'삐미'는 조류독감으로 난리가 난 닭들과는 수준이 다르다.
삼계탕, 닭튀김 등의 재료가 아니라 인간과 교감(?)을 나누는 애완동물이기 때문이다.
"삐미는 '닭대가리'가 아니에요. 어린애 머리띠를 해주면 좋아하고 사람 말귀도 잘 알아 들어요".
최씨는 '삐미'가 집안에도 들락거리며 라면, 김치, 육계장을 주면 좋아서 노래하며 잘 먹는다고 했다.
'삐미'는 한달에 1번씩 햇볕이 좋은 날 목욕도 한다.
최씨가 세숫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아 '삐미'를 발라당 뒤로 눕혀 놓고 씻겨주니 시원한 듯 가만히 있는 모습이 신기할 정도였다.
얼마전 초등학교에 들어간 조카 사랑(7)이가 '삐미'를 안고 있는데도 얌전히 있는 모습이었다.
"우리 조상들이 아마도 토종닭을 보고 봉황을 생각해 냈는지도 모르겠어요. 낯 가릴 줄도 알고 사람 말귀를 알아듣는게 그렇게 영특할 수가 없어요".
최씨가 이렇게 닭을 애완용으로 키우게 된 것은 멀리 떨어져 있는 딸때문이란다.
노란 병아리를 사 한달 키우고 놔둔 것을 버릴 수도 없어 고생하며 키우다 보니 이젠 정이 많이 들었단다.
사료를 먹이지 않고 사람이 먹는 걸 같이 먹이니 똥 냄새도 나는 줄 모르겠다고 한다.
"닭이 한 7년정도 산다고 하네요. 정이 들어 어디 갖다줄 수도 없고 이렇게 한 집에서 살아야지요".
*달팽이
"처음에는 너무 징그러웠어요. 그런데 보면 볼수록 정이 가요".
최형옥(23.대구시 달서구 본동)씨 집에는 달팽이가 300마리나 있다.
아프리카산 왕달팽이. 비싼 식용 달팽이를 애완용으로 키우고 있다니 미식가들이 침을 꿀꺽 삼키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집에서 달팽이를 키운지 어느덧 4년이 넘었어요. 미물이지만 달팽이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느낄 수 있어요".
최씨는 달팽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주면 더듬이를 늘어뜨리면서 신나 한다고 했다.
"자웅동체인 달팽이는 짝짓기할 때가 되면 암수가 각각 결정됩니다.
사람이 외모에 끌리는 것처럼 껍질이 예쁜 달팽이에게 다른 달팽이들이 많이 달라붙어 인기가 있어요".
집에 달팽이를 처음 분양받아 온 것은 누나 최수영(25)씨였다.
처음엔 갖다버리라고 난리였지만 지금은 가족 모두 달팽이 예찬론자가 됐다.
"달팽이는 평화주의자입니다.
동글동글 부드럽게 생겼고 먹이를 주면 서로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나눠 먹지요. 몸 색깔이 달라도 상관하지 않아 인종차별도 없어요. 고개를 들고 조용히 명상하기를 좋아하고 벽을 타고 올라갈 정도로 호기심이 왕성한 탐험가이기도 합니다".
달팽이를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있던 최수영씨는 '달팽이가 애인보다 좋은 7가지 이유'라는 독립영화를 공동제작해 제2회 KIPA 대학생 영상제에서 최우수상을 타기도 했다.
이들은 깨끗한 환경을 좋아하는 달팽이가 먹는 음식을 보면 농약을 많이 쳤는지 아닌지를 잘 알 수 있다고 했다.
집 텃밭에서 키운 채소는 맛있게 먹지만 농약을 친 채소들은 잘 먹지 않기 때문이다.
달팽이를 먹는다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다는 이들은 "온순한 달팽이를 키우면 어린 아이들의 정서 순화에도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고 했다.
김영수기자 stel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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