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리가, 서문시장에서 제일 오래된 자리입니다".
서문시장 4지구 김노인 마포상회 김이관(67)씨는 자신의 가게가 '서문시장에서 가장 오래된 가게'임을 자처하고 있다.
할아버지 고 김철희씨 때부터 '김노인 마포상회'란 상호를 걸고 장사를 했으니, 족히 90년은 됐다는 것. 때문에 김씨 가계는 서문시장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할아버지는 1916년쯤 서문시장의 모태가 됐던 서성로 부근에서 수의장사를 시작하셨어요. 그러다가 할아버지를 포함한 상인 50여명이 지금의 자리로 옮겨오면서 서문시장이 형성됐죠".
당시 '큰장'이라 불렸던 서문시장에는 영남권 각지의 소상인들이 몰려들었고, 서문시장 상인들은 대구 5일장이 서는 곳이면 어디든 소달구지에 물건을 싣고 걸어서 다녀오기도 했다.
그때만해도 시장은 난전 형태였다.
김씨의 아버지 고 김기홍씨도 할아버지의 사업을 도와 70여년간 장사를 했고, 김씨가 3대째 가업을 이어받은 것은 1988년부터다.
어릴 적부터 서문시장을 놀이터삼아 자라온 김씨는 서문시장의 예전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예전엔 옷 가게 같은건 없었어요. 모두들 배고프던 해방 전후 시절엔 감자, 고구마, 오징어, 국수를 삶아서 파는 가게가 시장의 절반 이상이었어요. 또 시골에서 땔감을 가져와 파는 사람들이 많았지요. 그런 시장이 어느새 4천개 점포나 생기게 됐네요".
시장에서 고생했던 얘기만 나오면 김씨는 아직도 손사레를 친다.
"시장에 냉.난방이 되기 시작한건 불과 몇년전이에요. 예전엔 뜨거운 물을 구입, 통에 담아 끌어안고 있는 게 겨울철 난방의 전부였어요. 큰 불도 자주 나, 쌓아둔 물건을 모조리 태우고 맨손으로 새로 시작해야 했던 적도 여러번이지요".
현재 서문시장은 대형할인점 등으로 많은 고객을 빼앗겨 점포를 내놓은 집들이 늘었고, 오는 4월1일 개통될 경부고속철도가 서문시장 상권을 더 위축시키지나 않을까 우려하는 상인들이 는 상태.
그러나 김씨가 90여년간 지켜왔다고 자부하는 것은 완고했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강조했던 상도. 남을 속여서는 안된다는 철학 하나로 90년 장사를 해왔다.
하지만 수의를 판매하는 김씨는 요즘 안타까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수입산 명주를 국산으로 속여파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아버님은 수의를 팔고난 20년 후를 생각하라고 말씀하셨어요. 외국산은 다른 실이 섞여, 20년 후에도 썩지 않고 거미줄처럼 시신을 덮고 있죠. 수의는 세상에서 마지막 옷인 만큼 최소한의 상도는 지켜줬으면 하는게 상인들에게 바라는 점입니다".
김씨는 현재 직장에 다니고 있는 아들에게 점포경영을 암시하고 있다.
4대째 가업을 대물림하기 위해서다.
"할아버지가 난전에서 가마니를 깔고 장사를 시작한 곳이 바로 이 자리입니다.
신용 하나로 100여년을 버텨온 셈이지요. 앞으로 아들에게도 '정직과 근면'이란 정신만은 반드시 물려줄 생각입니다.
그래야 우리 시장상인들도 소비자들로부터 신뢰받는 생활현장으로 되살아날 수 있을 겁니다".
최세정기자 beac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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