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년 프랑스의 소설가 '에밀 졸라'는 '나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의 대(對)국민고발장을 대통령에게 보냄으로써 당시 유럽전역을 논쟁의 소용돌이에 밀어넣었다.
그 유명한 '드레퓌스 사건'이다.
내용은, 그 4년전 독불전쟁에서 참패한 프랑스 군부가 패전책임의 면탈을 위해 군사기밀의 독일유출이란 간첩혐의를 유태계 장교 드레퓌스에게 뒤집어 씌운 것에 대한 고발이다.
▲2년뒤 진짜 간첩이 체포됐지만 음모의 발각이 두려웠던 군부는 그의 무죄주장을 묵살해 버렸다.
이 역사적 죄악을 에밀 졸라는 용기있게 고발했고 결국 1906년 이 조작된 '드레퓌스'는 진실과 정의의 햇빛에 무릎을 꿇는다.
그러나 프랑스 군부가 드레퓌스 대위의 무죄를 '공식인정'한 것은 정작 그 100년뒤다.
역사적 실체를 밝히기란 그래서 어렵다는 것이다.
▲국가정보원은 지난주, 1973년 유신정권시절 고(故) 최종길 서울법대 교수가 중정(中情)의 '유럽거점 간첩단사건'과 관련해 조사도중 의문사한 데 대해 유감을 공식 표명했다.
보도자료는 "실체적 진실여부를 떠나 유가족과 국민께 죄송하고 유감스럽다"였다.
유감표명 이틀전 서울지법 민사합의23부 법정에서 당시 중정과장 안모씨는 "최 교수가 간첩임을 자백하고 중정건물에서 투신자살했다는 당시 발표는 조작된 것"이라고 증언했다.
최 교수 사후 31년만의 일이다.
그때의 중정부장은 이후락씨.
▲87년 홍콩에서 남편 윤태식씨에 의해 살해된 뒤 간첩누명을 뒤집어 썼던 수지김(본명 김옥분.당시 35세)의 원혼을 달래는 지난 여름의 천도재때도 국정원 고위간부가 참석, 연좌제(連坐制)에 걸려 유가족들이 겪어온 피맺힌 고통에 사죄했다.
국가기관에 의해 은폐.조작된지 16년만의 일이다.
그리고 지금 국가는 45억원의 국가배상 판결이 내려진 이 사건과 관련, 장세동 전 안기부장 등 6명에게 "대신 물어내라"고 요구하고 있다.
▲1971년 '8.23 난동사건'으로 사망하고 처형된 실미도 684부대 훈련병들이 '경기도 벽제리 공동묘지에 표지판 하나없이 33년동안 가매장된 상태로 있다'는 증언이 불과 2주일전에 있었다.
당시 시체처리를 맡았던 공군본부 퇴직간부의 SBS TV'그것이 알고싶다'의 증언이다.
유해를 찾아나선 유족들이 벽제리의 41만평이나 되는 공동묘지에서 방황하다 울부짖던 장면이 생생하다.
그럼에도 우리 군부는, 그리고 중정(中情)의 후신 국정원은 말이 없다.
국민들 또한 영화 실미도가 관객 1천만명을 돌파했다는 '감탄'하나로 실미도를 잊으려 한다.
영화의 여운도 사라지고 없다.
사건발생 33년-우리의 건망증이 치매로 가기전에 '도대체' 밝혀는 놔야 할 것 아닌가.
강건태 논설위원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