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윤채기자의 영덕 대게잡이 체험

삼세번이라 했던가. 한번은 배를 탔다가 중간에 파도가 심해 돌아왔고, 또 한번은 기상악화로 아예 승선조차 못했다.

대게잡이 체험이고 뭐고 간에 포기할까도 생각했다가 한번만 더 기다려보자는 심정으로 또다시 축산면 경정1리 항구로 나간 것이 24일 새벽 3시30분. 몇 번 실패하고보니 이제는 요령이 늘어 우선 휴대전화로 기상부터 체크했다.

아예 배에 오르지도 못한 전날보다 파도가 더 심하단다.

걱정이 앞서 다시 해경 임검소에 전화해본다.

"오늘 배 출항할 수 있나요" 돌아온 답변은 반갑게도 "가능하다"다.

다소 위안이 되긴 해도 바다 날씨는 워낙 변동이 심해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슬그머니 불안하다.

"왔수". 어디서 투박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승선할 혜림호(9.7t)의 선장이다.

두 번에 걸쳐 봤던 얼굴이라 반갑다.

혜림호의 승선 가능 인원은 13명. 그러나 대게잡이엔 많은 선원이 필요없어 선장과 선원 2명만 오른다.

불청객 기자가 끼였으니 오늘은 전체 승선 인원이 4명이다.

"타시우". 선장 유천택(49)씨가 먼저 오르고 그 뒤를 말없이 따른다.

새벽 4시다.

간혹 동네 어귀서 개짓는 소리만 들릴 뿐 아직은 사방이 조용하다.

조심스레 항구를 빠져나간 배는 10분후터 속도를 낸다.

선장 유씨의 항해 솜씨는 신기 그 자체다.

며칠전 낮에 바다를 봤을 때 연안바다에 정치망과 가두리 양식장들이 적잖았는데 혜림호는 그 사이를 잘도 빠져나간다.

사방이 어두워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데도 고개를 내밀어 이곳저곳을 살피며 키를 잡는 유씨다.

그 기술이 그저 놀랍다.

"이 정도는 눈감고도 할 수 있소. 이곳에서만 35년째 배타고 있는데…". 놀라서 벌어진 '그 입 다물라'는 메시지같다.

20여분 쯤 나가자 바다 위에는 불 밝힌 배들이 수없이 떠 있다.

혜림호보다 더 일찍 작업 나온 어선이란다.

바다 위 배 불빛을 보니 '아침형 인간' 등등하며 지금 와서 떠들고 있는 도시인들이 그저 왜소하게 느껴진다.

"저기 앞 배가 바지선이오. 바지선은 예인선이 끌고 가는데 그 바다사이를 강한 와이퍼로 200m 가량 연결시켜 놨지. 자칫 그 줄에라도 걸리면 끝장이우". 선장 유씨는 곧바로 무선기를 통해 바다에 떠 있는 동료들에게 알린다.

"바지.바지선.포항방면, 조심" 사방이 캄캄한데다 그 많은 어선 중 그 선박이 예인선인 것을 어떻게 알까. "간단하다오. 육지의 도로에 교통 신호가 있다면 바다에는 암호가 있지요. 청색 등을 켜 놓으면 포항 방면으로 간다는 것이고, 붉은색 등은 울진 방향, 즉 북쪽으로 가고 있다는 거예요. 좁은 거리에 청색등이 2개 켜져 있으니 바지선으로 보면 되는 거구요".

1시간 30분을 갔을까. 먼동이 터 온다.

갑자기 선원 남복이(54)씨와 황덕승(49)씨가 바빠진다.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선장 유씨가 그물을 고정시키기 위해 설치한 부표 앞까지 배를 갖다 붙이자 선원들은 부표를 잽싸게 낚아챈다.

"아이구, 오늘 도랑물(조류가 세다는 뜻)이다". 선원들과 함께 간신히 부표를 잡아당겨 기계에 붙들어 매니 그때부터 해저 230m아래 쳐 놓은 그물이 올라온다.

그러기를 5분여, 영덕대게가 속속 보인다.

모두들 손놀림이 더욱 분주해진다.

얼떨결에 그물에 걸린 대게 분리 작업에 나선다.

영 쉽지 않다.

"이놈들이 오늘 낯선 손님왔다고 얼굴 가리는 것 같구먼". 생각만큼 게가 올라오지 않자 선장은 기자를 걸고 넘어진다.

일에 매달리다보니 조금전까지 있던 멀미도 자연 사라진다.

대게 어미게인 속칭 '빵게'와몸길이 9cm 이하 게는 올라 오는 대로 바다로 다시 던져버리는 선원 남씨와 황씨의 솜씨가 익숙하다.

"큰 놈들은 왜 잡히지 않죠". 대부분 게가 몸길이 13~18㎝ 내외로 작은 것에 의문이 생겨 물어보니 "옛날에 모두 잡아버렸기 때문"이란다.

그래도 한 30여분 작업하니 영덕대게가 한바구니 가득하다.

게도 활어처럼 살려야 제값을 받기에 바닷물을 담은 수조통에 옮겨 놓길 서너번. 아침 6시30분쯤 되자 바로 앞에서 해돋이가 시작된다.

바다 위에서 맞이하는 일출, 장엄한데다 더없이 아름답다.

오전 7시. 1차 그물걷이 작업이 끝이다.

방금 걷어올린 그물 길이는 1천여m. 유씨는 이런 그물을 인근에 12개 정도 쳐놓고 있다.

한번 출항하면 보통 두 개 정도 작업하고, 나머지는 돌아가며 같은 과정을 거친다.

시간이 지날수록 바람이 드세진다.

파도도 높아진다.

난생 처음 바다 한가운데서 높은 파도를 만나니 이런저런 걱정이 엄습한다.

"물(조류)이 너무 세 작업이 어렵다"던 선장 유씨는 며칠전 쳐놓은 그물 2개가 보이지 않는다며 찾아 나선다.

그물 한 개가 100여만원이니 두 개면 200만원. 못 찾으면 며칠에 걸친 바다 작업이 공염불이다.

유씨의 눈매가 예사롭지 않다.

1시간을 찾아 헤맸지만 그물은 끝내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그물이 사라진 원인은 두가지. 하나는 바다 밑을 쌍끌이 그물로 휘저어 대게잡이 선원들로부터 원망의 대상이 된 기선저인망 어선이 끌고 가버렸거나 다른 하나는 조류로 어디론가 떠밀려 간 것.

다시 파도가 잠잠해진다.

선장 유씨는 "다음에 찾자"면서 대신에 다른 그물 한 개를 더 건져 올리자고 한다.

오전 8시. 작업 재개다.

이제는 제법 숙달이 됐다.

껍데기를 벗은 '홋게'도 간혹 올라온다.

곰과 뱀이 동면 직전 가장 영양소가 풍부한 것처럼 홋게도 탈각할 때가 가장 상품이다.

특히 홋게는 날 것으로도 먹는다.

서너마리를 게눈 감추듯 먹어버리니 "뱃사람 체질"이란다.

그런데 아침 밥 먹을 기미조차 없다.

"밥 안 먹나요". 새벽 3시부터 움직이다 보니 허기가 져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기도 해 참다못해 말문을 열었다.

"우리는 바다 위에서는 밥 안먹어요". 더 이상 할말이 없다.

이유는 있다.

바다날씨는 언제 변할지 모르기 때문. 그래서 한시바삐 작업을 마치고 항구로 돌아가는 것이 급선무다.

보통 바다 작업 나오면 입항하는 시간은 오후 2시. 그때까지는 쫄쫄 굶는다고 한다.

뱃사람들이 위장병을 많이 앓는 이유다.

예상외의 이야기다.

바다 위에서 생선을 건져 회쳐 먹는 등 포식할 줄 알았는데….

작업을 다 마치니 오전 9시30분. 뱃머리가 항구로 향한다.

"오늘 운 좋은 줄 아슈". 그게 뭔 소릴까. 최근 조류가 그물을 꼬여 놨기 때문에 게가 많이 걸리지 않아 작업시간이 평소보다 3시간 정도 앞당겨졌다는 것이다.

다시 항구에 들어오니 오전 11시다.

기다리던 화물차가 오늘 잡은 게를 싣고 쏜살같이 사라진다.

모두 살아 있는 놈들을 수족관에 옮겨 넣기 위해서란다.

수입이 궁금하다.

"오늘 얼마쯤 벌었나요"고 묻자 선장은 "한 150여만원 정도 되려나"면서 며칠만에 작업 나온데다 경비 제하면 별 것 아니라고 한다.

잡은 게는 부인이 집에서 택배 주문을 받아 처리한다.

판매 가격은 마리당 1만~3만원 정도. 유씨 집(054-732-4083)은 영덕대게 원조마을인 축산면 경정2리에 있다.

영덕.최윤채기자 cycho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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