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을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라고 했다.
그 탓인지는 몰라도 나라에 웃음기가 싹 가셨다.
웃는 얼굴들 만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도무지 웃지를 않는다.
정말 웃어야 하는 대목에도 마지못해 덤덤해 하는 표정에서 그친다.
웃음을 억지로 참는 것도 아닐 것인데 시국이 시국이니 만큼 그래서 다들 웃음을 자제하고 마다하는 것인가. 아니면 진짜 웃을 일이 없어서 인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요즘이다.
정치판은 그럴 수밖에 없다손 치더라도 경제 사회 문화 어느 구석 어디에고 웃는 얼굴들이 없다.
어쩌다 이 지경에까지 오게 되었는지 기가 막힌다.
답답하다.
그 원인을 정확히 아는 사람도 없고 마땅히 물어 볼 곳도 없다.
주름진 서민 가계는 구겨질 대로 구겨져 있고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아우성들로만 입이 찢어진다.
탄핵을 찬성하는 쪽이나 반대하는 쪽도 한결같이 굳어지고 일그러진 얼굴 일색이다.
여유들이 없다.
이렇게 웃음이 없는 시절도 아마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웃음을 발견한 것이다.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머지않아 고심 끝에 대통령 탄핵여부를 결정하게 될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그들이다.
이들이 사무실을 들어서거나 나설 때면 벌떼 같은 기자들의 질문 세례를 받기 마련이다.
이럴 때마다 몇 재판관들은 빙긋 웃으며 한마디 할 때도 있고 아니면 일단은 웃은 후 입을 꾹 다물며 바쁜 걸음을 옮기기도 한다.
그 모습이 자주 TV 화면에 비치는 게 유독 눈에 띈다.
웃는 그 모습이 얼마나 좋은지. 이 지경에서 재판관들마저 성낸 얼굴들을 한다면 요즘 분위기는 더없이 탁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갑자기 헌재가 각광을 받아서 멋쩍어 웃을 수도 있지만 하여튼 그 이유가 어떻든 웃음기 없는 이 시절에 웃음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게 퍽 인상적이다.
출판사 학고재에서 산문서 14번째로 낸 '잔잔한 웃음'이란 책이 있다.
'어느 쾌락주의자의 고전 이야기'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전북대에서 30여 년 간 교수로 재직했던 김준영 선생의 산문집. 평생을 우리 고전문학과 국어, 특히 구비전승 문학을 연구하고 제자를 기르며 얻은 생각과 삶의 단면을 그야말로 잔잔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을 낼 당시 선생의 나이가 여든 둘이었다.
그러니 얼마나 익고 또 익은 내용들인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헤르만 헷세는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유머, 미소, 세계를 한 폭의 그림으로 변화시키고 사물을 잠깐 동안 존재하는 놀이와 같이 바라보는 것이 어울린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는 그냥 나이가 먹는다고 해서 얻어 지는 것을 이르는 말은 아닐 것이다.
지은이도 책머리에서 인간은 복잡다단하고 기기묘묘한 생활에서 일마다 신비롭고 감탄스럽고 웃기고 울리는 일의 연속이라고 했다.
하물며 그것이 80여 년을 연속했으니 그 그림의 변화는 무쌍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웃음'이라는 전제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소재 덕분에 읽는 재미 또한 엄청 솔솔한 책이다.
우리의 민요나 설화, 여기다 속담과 시가에다 일상에서 만나는 일화까지 덧붙여 번뜩이는 기지와 넘치는 해학, 재치와 익살이 잘 조화를 이룬다.
뒤편에는 우리의 고사성어와 요즘 관심이 깊은 풍수설화까지 곁들였다.
특히 지은이는 풍수의 경우 예전의 우리 생활감정에 깊이 스며든 것들이 학계의 무관심으로 거의 수집되지 않았다는 점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이제라고도 가능한한 수집해 두어야겠다고 해 학자로서의 양심을 여지없이 드러내 보여 주기도 한다.
그렇지만 지은이가 역시 무게를 두는 것은 웃음. 전편을 통해 흐르는 웃음들은 언제나 우리 민족의 풍부한 감정들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고 세상이야기나 사람살이에 대해 알게 모르게 지혜와 슬기를 길러 준다.
좀처럼 옛날 이야기 듣기 힘든 요즘에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지은이는 인간이 언어를 만들어 낸 공로보다 언어가 인간을 만들어 낸 공로가 더 크다고도 하며 기지는 자신을 성장시킴과 아울러 타인에게 도움을 주고 쾌감을 준다고도 한다.
아울러 기지가 있어 남을 웃기는 그런 사람, 익살스러운 사람, 구수한 사람, 명랑해서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주는 사람, 이러한 사람들이 주위에 많이 있다면 그만치 우리 생활은 명랑해지고 웃고 살 수 있을 것이니, 이런 사람들을 일러 인간에게 공헌하는 사람이라고 한대서 고개를 저을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적고 있다.
어떤 집에서 일을 마치고 막걸리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옆 집 사람이 한 잔 얻어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남의 술자리에 끼어들기도 쑥스러운 일. 그렇지만 막걸리 생각은 간절하고 명분은 없고 그래서 염치 불구하고 사립문을 밀치고 들어가 보니 개가 마루 밑에서 자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어찌 개가 마루 밑에서 자지?"하며 끼어들자 좌중이 웃으며 맞았다는 것이다.
본문에 짧게 나오는 이야기중 한 토막이다.
지금, 모두가 시큰둥하고 웃음기 없는 시절. 왜 개가 마루 밑에서 자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까지는 없지만 헌재의 재판관들 웃음만은 한번쯤 곰곰이 새겨 볼 만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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