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선무당에게 칼까지 주랴

선무당은 칼춤을 추지 못한다.

서투르고 미숙해서 굿 가무(歌舞)를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그저 쌀알이나 엽전, 솔잎 따위로 신점(神占)이나 쳐주는 아마추어 수준의 무당인 만큼 위험한 칼을 쥐어주지 않고 무당가문의 대(代)를 물리거나 이어갈 수도 없게 한다.

그래서 함량미달의 '준비 안된' 신참 무당에게 칼까지 쥐어서 칼춤을 추게 할 경우 그 폐해를 '선무당 사람 잡는다'고들 일러왔다.

이번 총선 투표도 따져보면 여.야당과 우후죽순처럼 나선 후보들 중 누가 국정을 망치고 사람잡을 선무당인지를 가려내는 선별적 정치게임이랄 수 있다.

현재의 여론 추세를 감안해 탄핵소추가 부결됐을 때를 예상해보자.

탄핵을 원했던 계층이나 야당은 '이제 더 기고만장, 무슨 위태위태한 일들을 더 저지를지 남은 4년간을 생각하면 답답하고 불안하기 짝이 없다'는 우려와 반발을 보일 것이다.

반대로 탄핵반대 지지계층과 여당은 '이제 부패 야당으로부터 발목 잡히지 않고 제대로 개혁과 변화를 이끌어 갈 수 있게 됐다'고 당당히 나설 것이다.

어느쪽이건 총선의 물줄기가 흘러가는 마지막 포구(浦口)의 끝에는 노 대통령이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 이번 선거만큼은 그분과 탄핵의 결과나 예측을 도외시한채 당과 후보의 개별적 선별기준만으로 투표하지는 않을것이란 얘기다.

그렇다면 탄핵소추가 부결되고 노 대통령이 무대 위로 다시 재등장하는 제2막의 가설을 전제하고 유권자들이 어느 당을 찍을지를 생각해보자. 다수 국민들의 머리속에는 맨먼저 어떤 전제조건을 떠올릴까. 아마도 여론조사에서 앞서고 있는 여당쪽으로 찍겠다는 사람들도 노 대통령이 탄핵소추 직전의 모습과는 달리 내면적인 자기 변화를 겪고 새로운 캐릭터와 변화된 분장으로 무대에 올라야 할것이라는 전제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엘바섬에서 돌아온 나폴레옹이 자기변화 없이 정복욕에 찬 황제의 야심을 버리지 못한채 과거의 모습 그대로 복귀함으로써 또다시 센트 헬레나 섬으로 떠나가야 했던 교훈까지 들먹일것도 없이-.

이번 선거에서 많은 유권자들이 생각하고 있는 우선된 가치는 여.야 어느쪽이든 '선무당에게는 칼(국회다수의석)을 쥐어 줄 수 없다'는 가치다.

솔직히 탄핵소추전까지 노 대통령의 국정 수행행보는 70% 가까운 국민들로부터 신뢰와 지지를 얻지 못한 '미숙한' 지도자의 이미지로 인식되고 있었음은 안타깝지만 사실이었다.

처음 그의 개혁과 변화를 이끌어 보겠다는 의지와 확신은 모두에게 필요하고 신선한 정치철학임이 분명했다.

그런 젊은 새 지도자의 개혁정신은 꽃피어야 했고 국민은 그러한 비전을 밀어줬어야 했다.

조금 미흡해도 숙련의 말미를 기다려주면서 차가운 비난에 앞서 따뜻한 격려도 필요했다.

그래서 처음 국민들은 그렇게 대하고 기다렸었다.

그럼에도 국민들에게 위태위태하고 불안정해 보이는 아마추어 수준의 이미지로 비쳐졌고 탄핵정국의 유리한 상황에서조차 절반이하의 낮은 지지도속에 맴돌고 있다.

이제 다시 무대에 서는 제2막의 기회가 온다면 그때는 '과연, 젊은 개혁 지도자 답게 바뀌었구나'라는 감탄과 박수가 나올만큼 관객을 감동시킬 수 있어야 한다.

만약 그러한 원숙해진 변신의 기대와 희망을 보여주지 못하고 '이제 제대로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앙앙불락의 옛모습 그대로 나타날 것같은 불신을 보이면 국민들은 그에게 칼이 될 수있는 다수의석(議席)을 쥐어주지 않으려 할 것이다.

부패와 분열의 집단으로 비친 한나라당 또한 다수의 힘만을 휘두르는 선무당 집단 수준이란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그들에게도 다수의석 확보라는 칼을 쥐어 줄리 만무하다.

노(盧)편을 들자는게 아니라 이 난국의 가장 현명한 해법은 노 대통령이 새로운 캐릭터와 변화된 분장으로 다시 무대에 올라 멋지게 박력있는 칼춤으로 4년내내 관객(국민)들로부터 박수를 받으며 전진하는 길이다.

그런 믿음만 있다면 이번 선거는 여.야 의석 비율이 어떤 분포가 되든 대한민국은 씽씽 굴러 갈 것이다.

우리당 후보의 지지도가 뜨는 것도 그런 기대와 희망을 갖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에 하나 다시 돌아와서도 오기든 아집이든 오로지 지난 스타일 그대로 빡빡 우기며 마이웨이(my way) 하게 된다면 그가 지지하는 정당에 칼까지 쥐어 줄 수는 없지 않겠는가. 부디 이 혼란한 갈등과 분열을 끝내기 위해서도 청와대 은둔 기간동안 우리지도자가 순화된 그러면서도 참 개혁의 강한 의지가 잘 조화되고 원숙해진 지도자의 모습으로 부활하기를 기대해 보자.

김정길(명예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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