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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개혁-(14)희빈 장씨와 숙빈 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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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술환국이후 후궁으로 강등된 희빈 장씨는 인현왕후 민씨가 병에 걸리자 재기를 꿈꾸었다.

숙종 27년(1701) 34세의 민씨가 세상을 뜨자 남인 행부사직 이봉징은 6년간 왕비 자리에 있었던 장희빈은 다른 후궁들과 복제가 달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숙종이 이를 받아들일 경우 왕비 복위운동으로 연결시키려는 계획이었다.

숙종은 이봉징을 유배 보내는 것으로 강경하게 대응하면서 이 기회에 장희빈까지 처리하기로 결심했다.

숙종은 인현왕후가 병든 지 2년이나 되었으나 장희빈이 문병하지 않았고, 중전이라 부르지도 않았으며, 무엇보다 '남몰래 취선당(就善堂) 서쪽에 신당(神堂)을 설치하고 매일 두세 종년과 더불어 중전을 저주했다'면서 장희빈에게 사사(賜死)를 명했다.

인현왕후의 죽음이 재기의 기회가 아니라 저승의 초대장이 된 것이다.

그런데 희빈 장씨가 인현왕후를 무고했다고 고변한 인물은 바로 숙빈 최씨였다.

'숙종실록' 27년 9월 23일조는 "이때에 이르러 무고의 사건이 과연 발각되니, 외간(外間)에서는 혹 전하기를, '숙빈 최씨가 평상시에 왕비가 베푼 은혜를 추모하여, 통곡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임금에게 몰래 고(告)하였다'"라고 적고 있다.

남인들의 미인계로 궁중에 들어온 장희빈은 서인들의 미인계를 이기지 못하고 목숨을 잃은 것이었다.

연적이자 정적이었던 장씨를 제거한 최씨가 숙종 44년(1718) 사망하자 숙종은 장례를 성대하게 치러주었다.

이로써 두 여인은 모두 죽었으나 이것으로 끝은 아니었다.

소론은 장씨의 아들 세자를 지지하고, 노론은 최씨의 아들 연잉군을 지지하면서 두 아들은 모친의 증오를 계승해야 했다.

그리고 수많은 당인들이 다시 죽어갔다.

이 역시 증오의 정치가 낳은 비극이었다.

역사평론가 이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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