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교육정책 당국과 일부 교육전문가를 포함해 많은 국민들은 입시제도 개혁에 중독돼 있다.
이것은 마약과 같다.
누구나 교육부 장관으로 취임하면 제일 먼저 이 마약이 눈에 띈다'.
지난 99년 출간된 '지식경제를 위한 교육혁명'이란 책의 한 대목이다.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경제, 문화, 산업 등의 관점에서 진단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명쾌한 논리가 돋보이는 책이다.
'대학입시제도 개혁 증후군'이란 소제목의 이 글을 조금만 더 살펴보자.
'입시제도 개혁이라는 마약은 복용하는 사람에게 강력한 환상과 쾌감을 준다.
개혁 중의 개혁인 것처럼 보이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 것도 치료되지 않고 결국에는 그것을 먹는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 그야말로 마약일 따름이다'.
실제로 그렇다.
80년대 이후 역대 정권은 한결같이 입시제도 개혁에 힘을 쏟았다.
선봉은 당연히 교육부 장관. 졸업정원제, 학력고사, 본고사, 특차 선발, 수능시험, 특별전형, 수시모집…. 지나고 나면 재활용 여지도 없이 악성 폐기물이 되고 마는 숱한 개혁정책들이 줄을 이었다.
역대 정권과 장관이 입시제도 개혁이라는 '마약'에 취한 결과는 참담하다.
수시로 바뀌는 정책을 따라잡느라 지쳐버린 학교는 학생들에게 외면받고 있다.
학교만이 해 줄 수 있는 인성이나 가치관 교육 등의 가치조차 홀대받는다.
반면 사교육 시장은 엄청나게 팽창했다.
철학보다, 윤리보다 상업적 이윤을 우선하는 시장은 이미 교육부의 통제 범위를 벗어났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교육정책 당국과 교육부 장관은 이제 '입시제도 개혁'에다 '사교육비 절감'이라는 더 강한 마약을 꺼내들고 있다.
장관 스스로가 '임시 처방'이라고 밝힌 EBS 수능강의는 교육당국뿐만 아니라 전 국민을 강력한 환상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국민들의 기대는 크지만 사교육 시장은 벌써 정책을 앞서나가고 있다.
'EBS 방송교재를 완전 분석해 수능 출제가 예상되는 참신하고 독창적인 내용으로 강의한다'는 학원가의 광고가 지난달 말 나왔을 정도다.
마약은 줄일 수 있는 게 아니다.
끊어야만 하는 것이다.
대학입시제도의 근원적 문제는 미국처럼 대학의 선발권을 확실히 보장하느냐, 프랑스처럼 아예 박탈하느냐의 한 쪽으로 분명히 해야 해결할 수 있다.
여기서 파생된 사교육비는 대학입시제도라는 근원을 해결하고 학교교육 본연의 가치를 되살리는 데서만 줄여갈 수 있다.
공교롭게도 앞서 언급한 책의 추천글을 쓴 사람이 안병영 현 교육부 장관이다.
"새 밀레니엄의 문턱에서 이러한 책을 만나는 것은 큰 기쁨"이라며 자랑스럽게 추천한 책의 내용을 그는 벌써 잊었을까. 김재경기자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