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5년 당태종 이세민이 이끄는 15만 원정군이 고구려 요동성을 함락했다.
수 나라 양제가 4개월 동안 공략했지만 넘을 수 없었던 난공불락의 요새를 불과 10여일 만에 함락한 것이다.
특히 당군의 요동성 함락 선봉에 섰던 장수 중에 신라 출신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신라관직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충격파의 주인공은 신라의 6두품 출신의 설계두 장군. 그는 뛰어난 무술 솜씨와 함께 방대한 전술적 지식을 갖췄지만 골품제도에 따라 장군이 될 수 없자 가족들과 함께 당나라로 망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621년 가족들과 함께 신라를 떠나 당나라로 망명했습니다.
골품제도라는 족쇄에서 벗어나 꿈을 펼치고 싶었습니다". 백발을 날리며 임시 막사로 들어선 설 장군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취재진이 먼 북쪽 요동의 병영까지 찾아온 이유를 알고 있는 듯 했다.
"나는 6두품 출신입니다.
진골보다 낮은 계급이지요. 신라의 골품제도 아래에서 내가 오를 수 있는 최고 관등은 6등급인 아찬입니다.
아찬 관등으로 장군이나 장관이 될 수 없습니다". 설 장군은 신라의 폐쇄적인 골품제도는 개인의 재능을 제한하는 잘못된 제도라고 비판했다.
그는 신라 사회 일각에서 일고 있는 '조국을 배신했다'는 주장에 대해 "조국이 사람마다 차별을 두어 재능을 제한하는 것은 올바른 처사냐"고 되묻고, "국가의 근간은 사람인데 사람의 재능을 출신별로 제한하고 진골이 요직을 독차지하는 골품제도는 신라의 국력 약화의 원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설계두 장군의 사연과 관련 신라의 고위관료들은 "골품제는 신라가 중앙집권 국가로 성장하면서 주변의 부족들을 흡수, 통합하면서 지배세력의 크기에 따라 내려준 계급제도"라며 "오늘날 강력한 신라를 형성한 근간"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진덕여왕의 한 측근도 "관료 중에 골품제도에 불만을 품은 자가 일부 있는 것으로 안다"며 그러나 "골품제도는 백성들의 생활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 만큼 당장 개선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한 사회학자는 이와 관련 "골품제가 신라를 꽁꽁 묶어두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 그렇지만은 않다"며 "예컨대 화랑과 낭도는 골품이 다른 경우가 많지만 평생 친구로 지내는 경우도 많고, 6두품 출신 대학자 강수가 계급이 낮은 여자와 결혼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골품제가 의복의 재료나 색깔, 집과 마구간 등의 크기에도 제한을 두고 있어 백성들의 생활수준이 나아져 의복이나 집의 크기 등에 욕심이 생기면 사회적 갈등을 불러 올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역사신문※ 역사신문은 역사적 사건 당시 오늘날과 같은 신문이 있었다면 어떤 기사가 나왔을 것인가 생각해보는 지면입니다.
※ 참고자료: 국립 중앙도서관·국가지식정보통합검색 시스템·한국역사연구회·역사신문·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청소년을 위한 한국사.이야기 한국사(이현희). 인물-난-미술-서책으로 읽는 한국사(정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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