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떤 시골 마을에 가난한 농사꾼이 살았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산골 양지바른 곳에다가 조그마하게 무덤을 써 놨어. 그런데, 하루는 서울 사는 정승이 자기 아버지 무덤 자리를 잡는데, 이 농사꾼 아버지 무덤 바로 위에다가 턱하니 자리를 잡는단 말이야. 거기가 참 좋은 자리였던 모양이지. 그러나저러나 남의 무덤 바로 위에다가 무덤을 쓰면 안 되거든. 옛날에는 그런 걸 아주 큰 불효로 알았어.
그러니 어떻게든 그걸 막아야 할 텐데, 이게 참 쉬운 일이 아니니 낭패지. 이쪽은 힘없는 농투성이요 저쪽은 서슬 퍼런 정승이니 말이야. 남의 무덤 위에 제 조상 무덤 쓰는 건 고사하고, 설령 남의 무덤을 파헤친다 해도 말 못할 처지거든.
벌써 정승 집에서는 장사 지낼 준비를 하느라고 땅을 고른다 구덩이를 판다 부산을 떨건만, 이 농사꾼은 말 한 마디 못 붙여 보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 끙끙 앓고 있었어. 이 때 마침 이 집 어린 아들이 그걸 보고 물어.
"아버지, 무슨 일로 그러십니까?"
"네가 알 바 아니다".
"그러지 마시고 말씀이나 해 보세요".
하도 졸라대기에 말을 해 줬지. 사실은 일이 이만저만해서 조상 뵐 낯이 없어 그런다고 했더니, 아들이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큰소리를 치네.
"뭐 그만한 일로 그리 걱정하십니까? 걱정 마시고 저한테 맡겨 주십시오".
"이놈아, 네까짓 게 무슨 수로 당해?"
"글쎄 걱정 마시고 맡겨 두십시오".
아들이 하도 큰소리를 치기에 그냥 내버려뒀지. 그러고 나서 며칠 있다가 인제 정승네 장사 지내는 날이 됐어.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산을 하얗게 덮었는데, 그 북새통에 이 농사꾼 아들이 슬그머니 거기에 갔어. 어른들 다리 사이로 요리조리 비집고 들어가서, 다짜고짜 구덩이 앞에 떡 버티고 서서 크게 소리를 질렀어.
"야, 여기가 바로 천하명당이로구나".
모여 선 사람들이 가만히 보니, 아 뭐 조그마한 아이가 누더기를 입고 남 장사 지내는 데 와서 흰소리를 하고 있단 말이야.
"저 맹랑한 놈을 어서 끌어내라".
앞을 다투어 손가락질을 해대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한 마디 더 했지. 먼 데까지 들리도록 아주 크게 외쳤어.
"여기에 무덤을 쓰면 새 임금이 난다 하더니, 오늘에야 주인을 만났구나".
그 한마디에 그만 온 산이 조용해지더래. 찬물을 끼얹은 듯이 그냥 잠잠해지더라는 거야. 왜 그러냐고? 아, 새 임금이 난다면 그게 역적이라는 말이거든. 지금 임금이 멀쩡하게 두 눈뜨고 있는데 새 임금이 난다면 그게 역적이 아니고 뭐야? 그러니 그 자리에 무덤을 썼다가는 제아무리 정승이라도 모가지가 남아나지 않겠거든.
"얘들아, 어서 관을 상여에 실어라. 딴 데로 모시자".
정승 집에서는 두 말 않고 주섬주섬 관을 상여에 싣고 훌훌 떠나버리더라는 거야. 이렇게 해서 그 아이가 할아버지 무덤을 지켰다는, 그런 이야기가 있어. 서정오(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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