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되돌아 보면 그리운 것들

얼마전 저녁때 친구 둘을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에서로 너스레를 떨며 이것저것 근황을 물었다.

형식적인 인사이되 궁금하기도 해 물었지만 좋다는 대답을 기대하진 않았다.

어렵다는 표현보다 강도 높은 표현을 찾을 만큼 요즘 경제가 어떻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다 아니까.

그 친구들은 특히 어려움을 맞고 있는 일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그 중 학원을 운영하는 친구는 교육방송을 통한 사교육 규제 정책으로 인해 수강 학생수가 급격히 줄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보험도 몇 개 해약한 그는 수입 감소에 따른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얼마전까지 잘 나가던 친구였지만 사교육 시장의 비정상적인 팽창은 국가적으로도 좋지 않으니 오히려 잘된 것이라는 공자 말씀까지 곁들이며 고급 승용차도 소형차로 바꿔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섬유업을 하는 다른 친구는 요즘 외국으로부터 주문이 들어오고 있지만 유가 인상으로 제품을 만들어봐야 손해라며 주문을 거절한 채 아무 것도 안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친구는 격한 어조로 정부를 비난하며 분노를 토했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 더해 봤자 재미없다며 술잔을 기울이면서 되도록 즐거운 기분을 유지하려 애썼다.

외환 위기 이전 이 친구들을 만날 때는 그래도 이번의 만남보다는 재미있었다.

삶에 대한 희망과 의욕을 가지고 말하는 어조부터 달랐다.

어느 곳의 아파트는 가격이 얼마며 새로 나온 차의 기능이 어떻게 좋은지를 열띤 어조로 말하며 나름대로 좋은 정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나누었다.

사실, 그 때도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았다.

만날 때마다 하는 화제의 폭이 어느 순간부터 좁아져 있어 만남 자체가 심드렁해지긴 했었다.

정치, 국제적인 흐름 등을 이야기하곤 했지만 음악, 책 이야기 같은 것들은 하지 않았으며 아파트 시세, 자동차 디자인과 성능, 애 크는 이야기 등을 주로 했다.

하지만 그래도 삶에 대한 열정 같은 것은 있었다.

나름대로 고민이 많아 당시에는 행복한 시기라는 것을 느끼지 못했던 20대 때처럼 노는 것에 대한 기대감, 미래에 대한 이야기,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화제 등 만나면 즐겁다는 기분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지만 살아가는 이야기 속에 희망의 공기가 깃들어 있었다.

어쩌면 '속물들의 저녁식사'였는지도 모르겠다.

지나간 것들을 그리워하고 생기와 의욕, 열정과 희망이 예전같지 않은 것은 그만큼 나이가 더 먹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이 먹으면서 자연스레 생기는 변화, 패기보다 원숙함이 우위에 서는 변화를 유난스럽게 이야기한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을 둘러싼 환경, 예컨대 경제상황같은 것이 사람에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변화에 영향을 주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역경 속에서 더욱 강해지는 비범한 인물들도 많겠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소시민들은 삶의 피곤함을 예전보다 더욱 많이 느낄 것 같다.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지금의 20대들은 30, 40대 이상의 선배들이 겪었던 20대 때보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총선 후에 구성되는 17대 국회는 정치를 잘하길 바란다.

기대수준 아래에서 맴돌며 경제에 부담을 주지 말고 제대로 정치를 펼쳐 경제를 살려야할 것이다.

김지석(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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