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무릉도원 복사꽃길

도심을 수놓던 봄꽃들이 하나 둘씩 북쪽으로 서둘러 여행을 떠나고 이제 화려하던 봄꽃들의 가지엔 연녹색 새싹이 움트고 있다. 춘정을 자극해 봄날 현기증을 일으키게 하던 그 화려함은 이제 새잎에 밀려, 가지 끝에서 몇 안되는 꽃잎만이 남아 눈 녹은 도심 아스팔트처럼 오히려 추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봄꽃은 역시 무리 지어 있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온산을 붉게 물들이거나 거리를 온통 하얀 꽃잎으로 수놓을 때 저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오는 것이다.

도심을 떠난 봄꽃에 미련이 남아 팔공산 갓바위 가는 길로 떠난다. 예비군 교장을 가로질러 갓바위 뒷길로 들어서면 지금 온 산이, 온 들이 복사꽃과 자두꽃으로 뒤덮여 있다. 도심에서 보기 좋으라고 심어논 꽃이 아니라 농민들이 거름주고 자식 보듬듯이 키워낸 과실주들이다. 가지마다 하얗거나 분홍색 그리고 연두색까지 어우러진 색의 잔치를 벌이고 있다.

그저 한 무리도 아니다. 온 들판을 덮고 있는 복숭아와 자두나무에서 형형색색으로 꽃이 무리지어 눈을 황홀하게 만든다. 능성동 교장을 지나면서 좌우로 펼쳐진 꽃길을 달리면 '오매 환장하것네'란 말이 절로 나온다. 갓바위 뒷길로 오르는 도로 양편에도 마찬가지. 가까운 곳이니 서두를 것도 없다.

은해사 쪽으로 향한다. 봄의 요정들이 온 들판에 요술방망이를 때려놓은 듯 끝없이 이어지는 복사꽃. 복숭아의 꽃말이 '그대의 매력' 혹은 '사랑의 노예'라는데 이 환장할 봄날에 연인과 함께 무릉도원길을 걸으며 사랑 고백이라도 하면 쉽게 그 사랑이 받아들여질 것 같다.

봄날에는 말뚝도 푸른빛을 띤다고 했는데 말뚝을 바라볼 여유를 주지 않는다.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듯이 끝없이 이어지는 꽃사태길을 무작정 달려본다. 은해사에는 아직 산중이라 그런지 목련도 피어 있고 벚꽃도 만개해 있다. 고즈넉한 산사 계곡에도 봄은 이미 그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졸졸졸 흐르는 계곡에서 피라미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이끼낀 부도탑에 봄햇살이 반짝이더니 종달새가 쉼없이 지저귄다.

가던 길을 되돌아 다시 팔공산으로 향한다. 꽃은 또 다른 모습들이다. 이번엔 역광이다. 꽃은 광선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한다. 푸근하게 꽃향을 머금은 솜처럼 보이던 놈들이 이제는 제각각의 모습들을 드러낸다. 매스게임이라도 하듯이 일사불란하게 색을 연출하던 놈들이 광선이 바뀌면서 저마다 잘났다고 자신을 보라 한다. 돌아갈때는 멀리 보는 것 보다는 가까이 있는 놈들을 자세히 살피면 또 다른 감흥이 있다. 동화사를 거쳐 팔공산 순환도로를 한바퀴 돈다.

아직 개나리도 남아 있고 벚꽃은 오히려 지금이 절정이다. 온도 변화가 심한 산중에는 도심에서 시차를 두고 피어나던 봄꽃들이 함께 피어 있다. 진달래도 곳곳에서 자태를 뽐내고 복숭아, 살구, 자두 등 조금 늦게 피는 꽃들도 함께 어우러져 있다.

사진.글 정우용기자 sajah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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