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시간과 공간의 좌표

항해하는 배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어디로 가려 하는지를 또한 확실히 하여야 한다.

이 두개의 위치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아무리 노를 열심히 저어도 소용이 없다.

아니, 부지런히 저을수록 어쩌면 원하는 곳으로부터 더 멀리 떨어져 나갈 수도 있다.

대통령 자리를 내어주고도 원내 과반을 누리던 한나라당이 드디어 제2당으로 전락하였다.

'국민의 정부'를 이끌었던 민주당은 대통령을 당선시켜 권력을 재창출하고도 허무하게 무너져버렸다.

이른바 DJP 연합으로 권력을 나누어 가졌던 자민련도 '서산에 해지듯이' 몰락해버렸다.

대신 엊그제 딴살림 차리고 나간 열린우리당이 여당을 자처하더니, 과반수를 점하는 거대정당으로 태어났고, 거리를 휘젓던 민노당이 당당히 제3당으로 원내에 들어갔다.

탄핵이든 다른 무엇이든 드센 바람이 불고나자, '세상이 바뀌었다'는 말이 실감나게 회자되고 있다.

이 말이 단순히 권력을 가진 패거리가 바뀌었다고 하는 뜻이라면 별스러울 것도 없다.

그러나 굳이 그렇게 말할 때에는 언제든 바뀌기 마련인 권력의 향배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그 바뀜에 이제까지와는 다른 어떤 방향성이 내포되어 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세상이 어디서 어느 쪽으로 바뀌었다는 것일까?

어떤 이가 '나는 동쪽에 있다'고 말했다고 하자. 그는 아직 아무 말도 않은 것이나 다름없다.

'왼쪽에 있다'거나 '뒤져 있다'는 말도 마찬가지이다.

기준이 없는 동과 서, 좌와 우, 앞과 뒤는 실질적 의미가 없다.

원점(原點)이 정해지지 않은 공간에서 좌표는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민노당이 좌에 있고, 한나라당이 우에 있으니, 열린우리당이 중도라고 하는 주장도 우스운 일이다.

극우나 극좌 정당을 한 둘 더 보태서 셈하면 나머지는 멀쩡히 앉았다가 좌파 또는 우파가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시간과 공간을 양축으로 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바뀌었든 아니든 이 세상의 원점은 어디일까? 시간과 공간의 두 축이 시작된 점을 원점이라고 한다면, 창조의 태초 또는 우주의 기원을 그 곳으로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편의상 문화사가 시작되는 시기, 그 때 인류의 삶터를 원점으로 삼아 생각의 가닥을 잡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역사와 지리는 바로 그 곳, 원점에서 시작해서 발전되어 왔다.

그리하여 시간상으로 우리는 산업사회의 성숙기 또는 후기 산업사회의 초기에 있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가 성숙하는 시기, 선진국과 후진국의 틈바구니에 서있다.

그리고 공간상으로는 지방 간의 성벽을 허물고 국가 간 장벽을 넘어 세계화로 가는 초입에 있다.

그에 따라 우리네 생활공간은 대륙 내지 아대륙, 나아가 세계를 무대로 확대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세계 최대의 경제지역을 향해 가장 활발한 보폭을 보이고 있는 동북아시아의 한가운데에서 살고 있다.

우리가 다른 많은 지구가족들과 더불어 여기에 있다고 할 때, 가야 할 방향은 어느 쪽인가? 그리고 우리는 지금 거기로 가고 있는가?

기업이 줄지어 해외로 나간다고 한다.

아직 국내에 있는 공장들도 태반이 나가고 싶다고 한다.

세계화의 추세라고 겉으로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떠나는 이유의 첫째가 기업하기 힘들어서라고 하고, 앞으로 더 힘들어질까 염려되어서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좌표는 원점 쪽으로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화를 외면하고 배타적인 민족주의를 표방하거나, 세계질서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는 행태도 같은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지식이 주도하는 정보화 사회로 들어가면서 새로운 지식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최고의 장인 대학을 평준화하고 국책연구소와 공공기관을 사방으로 흩겠다는 발상도 다를 바 없다.

세계도시(world city)를 앞세워 경쟁에 나서고 있는 구미 선진국들과 이웃나라의 전략을 비웃듯이 우리는 집안에서 제몫 나누기에 여념이 없다.

선거 득표용으로 시작해서 법까지 만들고야 만 천도(遷都) 소동이 대표적이다.

남들은 세계를 겨냥하고 있는데 우리는 말로만 동북아를 떠들고 있다.

태평양아시아(Pacific Asia)는커녕, 천년 전에 통일된 한반도마저 그 전체를 보지 못한 채 남한 땅만 들여다보고 신방 차리기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간 서울이 도쿄는 물론 베이징과 상하이에까지 기능적 우위(中心)를 내어주고 지역체계의 하위(周邊)로 주저앉고 말 것이다.

이 역시 무대를 줄여 잡는 후퇴요, 좌표를 원점 쪽으로 회귀시키는 역행이다.

'세상이 바뀌었다'고 하는 말의 내용이 이미 폐기된 낡은 이데올로기의 교리를 추종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항해가 목표로 하는 좌표는 역사와 지리의 실제적 발전 방향을 지속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을 꺾고 진보와 보수, 개혁과 수구라는 빛바랜 단순 도식에 빠져 갈등을 일삼게 되면 우리는 머지않아 우리의 좌표가 목표에서 멀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 때 가서 탄식하는 것은 너무 늦다.

시간과 공간은 원상복구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배의 선장과 항해사들이 그걸 명념했으면 한다.

유우익 서울대 교수.지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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