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선거도 끝났는데...

"선거도 끝났는데 이제 서울로 주소를 옮기지. 대구에 있어봐야 표 찍어줬다는 사람들 눈치나 봐야 되고, 얘들도 그만 서울로 전학시키는 게 어때?"

지난 19일 한나라당 대구. 경북 당선자들 모임 후 대구의 한 초선 당선자가 들었다는 말이다.

경북에서 올라온 선배 의원이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자신한테 충고로 하던 말이라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말을 전하는 그 당선자의 모습이 자못 진지했다.

오랫동안 정치권을 취재해온 기자라면 그 정도는 충분히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실제로 과거 정치인들 중에는 선거 때와 선거 후 태도가 달랐던 사람들이 많았다.

과거 서울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원로정치인이 선거가 임박한 때에도 대구로 내려가지 않아 "왜 안내려 가십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태연하게 "선거, 그거 한달이면 되지 벌써부터 내려갈 필요가 있나"라고 반문했다.

이 원로 정치인은 과거 지역구에서 당선된 후 "4년후에나 보자"며 곧바로 짐을 싸 주위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과거 민정당, 민자당, 신한국당 시절까지 핵심적 역할을 했던 의원들 사이에 이런 일은 거의 무용담에 속하는 일이다.

정당의 실력자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당 공천이 좌지우지되기 때문에 지역구에 아무리 공을 들여봐야 소용이 없었다.

또 다른 원로정치인은 "그때는 공천도 불투명한데다 한 지역구에서 두 번 이상 뽑아주지를 않았다.

지역구에서 안되니 한번 되고 나면 옮길 생각부터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같은 정치인들의 구태가 지금도 대물림되고 있다는 것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정치권이 세대교체를 하고 있지만 어느때가 되면 선배정치인들의 구태가 몸에 배어버리는 것이다.

신인으로 패기있게 국회에 입성했던 '초심'은 온데간데 없다.

위의 초선 당선자에게 조언한 의원들도 초기에는 좌충우돌하며 패기있는 의정활동을 보인 의원들이다.

그러나 특정당 후보라는 점 때문에 재선, 3선을 거저 달다시피 했기 때문에 지역구가 여간 만만해진 것이 아니다.

점점 정치 '자영업자'가 돼가면서 4년에 한번씩 있는 선거때 지역구에서 '공복(公僕)입네'라면서 시늉만 하면 4년이 또 보장된다는 생각으로 꽉 차있다.

실제로 국회의원에게 거주지 제한 규정은 없다.

비록 지역구에서 선출되기는 하지만 국민대표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어디에 살든 그 지역 국회의원은 될 수가 있다.

또 선거후 곧바로 주소와 가족들을 서울로 옮겨간다고 하더라도 동사무소에서나 알 수 있을 뿐이지 그 의원의 거주지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선거후 곧바로 집과 가족들을 옮겨갈 정도로 얄팍한 사람들이 입법활동인들 온전할 리가 있을까. "국민대표인 국회의원이라지만 절반은 지역대표성이 있다.

과거 정치인들의 요령만 배워서야 무슨 희망이 있겠느냐"는 한 원로정치인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할 것 같다.

이상곤 정치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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