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에 최초로 목화씨를 심은 사람과 또 그 장소를 아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다.
공룡발자국화석지인 의성군 금성면 제오1리 노인회관 옆에 서 있는 충선공삼우당문선생목면유전표(忠宣公三優堂文先生木綿遺田表)라고 쓰인 비문을 보면 이 곳이 의성에서 최초로 목화를 심은 시배지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 비문에는 고려 말 삼우당(三優堂) 문익점(文益漸)이 중국에서 귀국하면서 목화씨를 붓대롱에 몰래 숨겨와 경남 산청에서 처음 심었고, 이후 조선 태종때 손자 문승로(文承魯)가 목화 씨앗을 의성에 갖고 와서 처음 심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에 마을 유지들은 이를 기념해 1909년(순종 3년) 10월 유전표를 세웠다.
이후 일제강점기 1935년 12월 일본은 우리 민족이 세운 제오1리의 유전표는 그대로 버려둔 채 지금의 금성면 대리리 국도 28호변에 충선공부민후강성군삼우당문익점선생면작기념(忠宣公富民侯江城郡三優堂文益漸先生綿作記念)비를 세웠다.
이 비에는 당시 도지사 김서규(金瑞圭)의 기문을 일본인이 쓴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또 면작기념비 뒷면에 새겨진 일본인 설계공사 담당과 3명의 일본인 이름은 현재까지도 그대로 보존돼 오고 있다.
하지만 세월이 적잖게 흐른 지금 이 두 곳의 비문을 두고 지역 문화계에서는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지역 문화계에서는 "우리 민족이 가장 한국적인 전통적 모습 그대로 만들어 세운 비문은 상층부에 이끼가 끼었으며, 아마추어 미술인들의 탁본 자국인 먹물이 묻어있는 초라한 모습으로 서 있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반면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만들고 세운 면작기념비는 현재 행정기관이 관광화를 위해 가꾸고 보호하고 있는데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수년 전 작고한 지역의 한 문화계 인사는 생전인 지난 1996년 의성문화 제11호에 "대리리의 면작기념비는 일제침략문화의 소산"이라고 자세히 고증하기도 했다.
지역의 명망 있는 문화계의 한 인사는 "수년 전 구조선총독부가 헐리고, 전국의 명산 곳곳에 박힌 쇠말뚝을 뽑아내는 등 민족정기와 역사 바로 세우기에 전국민이 동참하고 있고, 국회에서는 일부 의원들이 '친일반민족법' 개정을 서두르고 있는 이 마당에 일제가 만든 면작기념비를 행정기관에서 가꾸고 보호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처사"라고 주장했다.
이 인사는 또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고, 자라나는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일제가 세운 면작기념비는 철수해야 한다"고 했다.
이와 관련, 의성군청 전병해 문화관광담당은 "문화재위원들의 고증과 자문을 거치고, 군민들의 중지를 모아 긍정적인 방향으로 대안을 모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의성.이희대기자 hdle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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