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클릭-촬영장 유치

◇너도나도 촬영장 유치

TV드라마와 영화 촬영지가 새로운 문화상품으로 떠오르면서 각 지자체들마다 촬영장 유치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최근 방영 내지는 상영됐던 드라마와 영화 중 지자체의 러브콜을 받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

최근 전남 신안군은 드라마 '섬마을 선생님'의 제작비 일부와 스태프 숙박료를 제공하는 대가로 촬영장 유치를 따냈다.

경남 하동군도 내달 방송 예정인 대하 사극 '토지' 촬영팀을 위해 악양면 평사리에 펼쳐진 3천여 평 규모의 세트장 건립비 12억원을 선뜻 내놓기도 했다.

하동군 한 관계자는 "박경리 소설 '토지'의 주무대인 하동에서 드라마를 찍는 것이 지역 홍보와 경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 유치를 결정하게 됐다"고 했다.

영화 촬영장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국내 영화사상 최다흥행을 기록한 '태극기 휘날리며' 촬영유치를 위해 경남 합천군은 평양시가지 세트장 2만여 평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세트장 건립에 5천만원의 현금을 지원했다.

또 최근 개봉됐던 영화 '바람의 전설'의 마지막 장면을 동해시 대진항에서 찍게 하기 위해 동해시는 영화제작자 20여명을 초대해 촬영장소 홍보행사까지 열기도 했다.

전남 여수시도 영화 '아홉 살 인생'의 주요 배경인 시골 초등학교 분위기를 내기 위해 예산 2억원을 들여 폐교를 완전히 개조해 제공했다.

◇약이냐, 독이냐 논란

경북 문경시는 지난 2001년 문경새재 도립공원에 '태조 왕건'의 촬영장을 유치, 폐광촌에서 역사문화 관광도시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한 모범사례로 꼽히고 있다.

3년 동안 촬영장을 다녀간 관광객만 470만 명에 이르며 입장료 수익만 50억원을 벌어들였다.

시에 따르면 600억원의 지역경제 파급효과를 낳았다는 분석이다.

4억원을 투자해 만든 촬영장으로 150배의 효과를 거둔 셈이다.

지난해 방영됐던 드라마 '올인'의 촬영세트장 건립비 3억원을 무상 지원해줬던 제주도 경우는 더 큰 효과를 본 케이스. 제주도청 김영옥 문화예술 담당은 "올인 방영 이후 간접홍보 및 관광수입이 1천764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이런 열기로 지난해 12월엔 영상위원회까지 구성, 영화 및 드라마 촬영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러 지자체들이 유치경쟁에 뛰어들면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수익성도 따져보지 않은 채 무분별하게 유치에 나서게 되면서 촬영장 유치가 곧 황금알로 직결된다는 등식이 깨지게 된 것. 오히려 혈세만 낭비, 안 그래도 힘든 지방재정에 독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충북 제천시는 지난 '태조 왕건'의 해상 세트장 조성에 12억원을 썼지만 주차료 외엔 건진 것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홍국영' 메인 세트장이 들어섰던 인근 충주시 경우도 세트장 조성비의 절반인 5억원을 투자했지만, 이후 시가 기대했던 관광객 수준의 절반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경남 산청군도 지난 2000년 영화 '단적비연수'의 '화산마을' 세트장 건축비용 1억원과 1억5천만원 상당의 현물을 지원했지만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면서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전문가들은 문경과 제주의 경우 드라마도 히트했지만 무엇보다 세트장을 주변의 유적지 및 환경과 잘 연계시키면서 촬영지를 관광상품으로 개발했기에 성공했지 단순한 세트장만으로는 관광상품화가 힘들다고 지적한다.

부산영상위원회 윤태미 기획팀장은 "다른 곳에서 성공했다는 이유만으로 무분별하게 유치에 나설 경우 오히려 짐만 될 수 있다"며 "영화나 드라마의 내용과 수익성을 검토한 뒤 해당 지역의 정서 및 환경에 적합한지를 잘 따져보는 등 반드시 충분한 검증기간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제작진의 무리한 요구

지자체의 과도하고 무분별한 유치경쟁도 문제지만 일부 제작진의 무리한 요구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지난 3일 모 방송의 외주제작을 맡은 한 드라마 기획사팀이 경북 영덕군을 방문, 영덕에서 드라마 촬영을 하는 조건으로 제작비 중 7억원을 부담해줄 것을 요청하는 제작지원 제안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영덕군은 난감해 하고 있다.

김상철 문화관광과장은 "예전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를 통해 많은 홍보효과를 봤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검토는 하고 있지만 7억원의 현금지원이 큰 부담"이라며, "추후 협의를 해봐야겠지만 솔직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실정"이라고 했다.

얼마전 종영한 모 드라마 주 촬영지였던 경북 울진군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제작진이 다른 지역에서는 20억원 지원을 약속했다며 세트장 건립비 및 제작비 일부를 지원할 것을 제의해 왔기 때문. 울진군 한 관계자는 "부담이 컸지만 지역 홍보가 절실했기 때문에 추경 예산까지 확보해가며 지원을 해줬다"고 말했다.

결국 울진군은 세트장 부지 매입비 1억7천만원과 5억원의 제작비를 부담했다.

지난 2월 대구도 한 영화제작진으로부터 영화제작비 및 스태프 숙박료 등 영화촬영 지원을 요청 받았으나, 현금 지원 대신 행정적인 지원을 한다는 수준에서 협의를 마쳤다.

드라마 제작진의 무리한 지원 요구 때문에 아예 유치를 포기하는 경우도 적잖다.

지난 2001년 충북 진천군과 옥천군은 한 드라마 제작진이 세트장 조성비 명목으로 10억원을 요구하는 바람에 제의를 거절하기도 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촬영장 조성이 관광객을 유인하는 효과가 있다고 해서 드라마 제작진이 제작비용의 상당부분을 해당 지자체에 떠넘기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영화기획자 이하영 (주)프리머스 이사는 "일부 제작진의 얄팍한 속셈도 문제가 있지만 충분한 검토 없이 지자체들이 막무가내 식으로 유치경쟁을 벌인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영화나 드라마의 흥행 성공률은 평균적으로 20% 내외 수준"이라며 "수익성 검토도 없이 촬영장 유치에 대규모 투자를 경쟁적으로 하는 것은 위험요소가 너무 크다"고 말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