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詩와 함께 하는 오후

안개 속 가야산의 허리 뒤틀린 층층나무에게

저물어도 갈 곳 없다고 속삭인 것을 누가 알까

가야 국도변, 별빛 뻥뻥 좀먹는 어둠에게

너만 나를 버리지 않는다고 눈짓한 것을 누가 알까

세월 흘러 층층나무 켜 보면 알지

수만의 혀가 비수처럼 층층 박혀 있는 것을

어느 날 무쏘에게 받혀 넘어진

어둠의 옆구리에서 콸콸 쏟아지는 무수한 낮달을 보면

외로우니까 슬프니까 삐어져나온

모서리나 뿔들을, 우리는 무엇으로 만날까

두 개의 구석이 만나 어색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보면

너는 알까

어느 날 내가 너에게 던진 그 위태로운 눈빛을

김영근 '누가 알까'

제 몸 속에 쌓아둘 것 하도 많아서 층층나무 꼭대기는 층층층층 보이지 않을 듯하다.

갈 곳 없는 날의 슬픔이 층층나무 층층 끝없이 자라게 하는지? 아니면 층층나무 층층 끝없음이 버려진 날의 슬픔을 콸콸 쏟아지게 하는지? 누가 알까? 알 수 있는 것은 혀의 비수와 낮달의 피 사이에 난데없이 무쏘가 끼어 있다는 것, 찌르는 모서리와 들이받는 뿔은 외로움의 육체이므로 층층나무 아래서 그대와 나는 층층층 위태롭다는 것.

강현국(시인.대구교육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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